■책소개

냉정하고 사려 깊은 역사와 현실 바로보기 이성의 회복을…, 자유로운 독립국가를…. 자유주의자 오기영의 진단

일제 강점기에는 민완 신문기자로 활동하다가 해방 직후부터 1949년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기까지 사오 년 동안 날카로운 필치로 당대의 현실을 비판했던 동전(東田) 오기영의 저서가 재출간이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나왔다. 1947년에 간행된 바 있는 『민족의 비원』과 그 이듬해에 나온 『자유 조국을 위하여』가 5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민족의 비원 / 자유조국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이번에는 한권짜리로 묶여 다시 나온 것이다. 지난 봄, 역시 재출간이라는 형식으로 나온 『사슬이 풀린 뒤』와 『진짜 무궁화-해방 경성의 풍자와 조소』까지 더하면 이제 오기영이 글 대부분이 새롭게 선보인 셈이다. 이미 나온 두 권의 책은 한 아버지와 형제자매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고난을 당하는 가족사를 그린 수필(『사슬이 풀린 뒤』)이거나, 촌철살인적인 풍자와 반어로 종횡무진 당대 현실을 비판하는 시사단평(『진짜 무궁화』)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민족의 비원 / 자유 조국을 위하여』는 깊이 있는 분석을 앞세운 논문의 성격이 짙다.

저자 자신은 “무슨 체계 있는 논문도 아니요 학구의 성과도 아니다”라고 겸양스러운 어조로 책을 내는 감회를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해방과 미군정, 남북한 각각의 단독정부 수립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간대를 온몸으로 살아간 한 고독한 지식인의 염원과 고뇌가 빈틈없는 논리로 전개되고 있다. 국내 현실에 대한 꼼꼼하고도 예리한 관찰, 국제 정세에 대한 탁 트인 시각, 언론/종교/산업/교육 등에 대한 저자의 풍부하고도 탁월한 견해를 통하여 이성보다는 주먹이 앞섰던 당시에 저자가 얼마나 힘겹게 현실과 씨름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염원하는 것은 외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자유로운 독립국가의 건설이요, 분열과 반목이 불식된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이었지만 그가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외세를 등에 업고 기득권을 장악하려는 국내 지도자들의 후안무치하고 무지막지한 세력 다툼 때문이었고, 이 비열한 싸움 탓에 전 국토가 혼란과 분열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시종일관 이성의 회복을 갈망하고 있다. 상식과 논리는 전적으로 무시되고 폭력과 테러, 반목과 질시, 독단과 몰상식이 현실을 압도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 오기영은 이성의 몰락을 탄식하면서 냉정하고 사려 깊게 현실과 역사를 바라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좌익 또는 우익이라는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합리적이며 상식이 통하는 나라의 건설이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좌 아니면 우로 양분되었던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오기영은 스스로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자처한다. 도산 안창호가 숨질 때의 상황, 특히 도산이 죽었을 때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시체실로 들어가 석고로 도산의 데드 마스크를 떴었다는 이야기나 눈꼽만치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송암 오동진에 얽힌 갖가지 일화 등은 딱딱한 논문의 형식인 다른 글들과는 달리 문학적 재미를 안겨주는 글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