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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 : <미몽>에서 <고령화 가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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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서 '知의 회랑'
  • 강성률 지음
출간일 2018-02-28
ISBN 979-11-5550-271-6 93680
면수/판형 신국판(152 X 225)·360쪽
가격 23,000원
201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세종도서 학술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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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한국 영화사로 본 가족 담론의 변화와 그 영화적 재현


    한국 영화가 다채롭게 재현해온 가족과 여성, 젠더 그리고 세대의 문제를 문화 연구자이자 평론가의 시선으로 면밀하게 분석해놓은 책이다. 한국 사회와 가족 담론의 변화상에 주목해온 필자의 문제의식은 신여성의 일탈과 파경을 그려낸 <미몽>(1936)에서부터 각 시대별 문제작들을 두루 거쳐 비혈연 가족이 겪는 시대의 비참을 담아낸 <고령화 가족>(2013)에까지 이른다. 나아가 천만 관객 영화들을 가족이란 프리즘으로 고찰하면서 최근 개봉된 <택시 운전사>와 <신과 함께>(2017)까지 포괄함으로써, 이 책은 80년 남짓한 기간 한국 영화의 통사를 일관된 시선으로 정리해놓은 셈이다.


    특히 필자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가부장제를 지적하면서,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영화라는 대중 매체에 투사된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실체와 폐단을 재조명한다. 한국 영화 속 가부장들은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경향에 힘입어 강인하고 권위적인 형상으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시절의 한파에 휘둘려 한없이 나약해지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 책에서 그들의 허상이 낱낱이 폭로되는 동안 세대교체는 물론, 여성과 젠더 이슈가 객관적으로 관측되었으며, 기존하는 가부장 중심의 가족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대안 가족의 모형들이 자연스럽게 모색될 수 있었다.

    새로운 지의 총화를 모색하는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의 학술 기획 총서 ‘지의 회랑’의 네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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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가부장, 여성 그리고 영화


    이제까지 한국의 가족은 가부장 중심의 억압이 횡행하는 공간이었다. 사회도 가족처럼 가부장적 수직 구조로 재편되어 있었다. 필자는 이런 가족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의 가장 큰 고객이 여성이기 때문에 영화도 이 문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지난 세기 한국 영화는, 특히 가족 문제를 다룬 영화는 한국 사회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대중문화 장르보다 영화는 대중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사회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특히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상황이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 속 가족과 여성의 문제가 중요함에도, 기존 연구는 아직까지 답보 상태거나 부분적인 시기에만 몰두해 전체적인 조감을 완성하지 못했었다. 필자의 목표는 바로 그 결핍을 채우는 데 있었다. 이 책 역시 지난 80년의 영화사와 가족의 변화를 한 시야에서 파악해보는 시도였다.

     


    이 글쓰기가 목표로 삼는 것


    첫째,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를 흔히 ‘대중문화의 총아’라고 하는데, 이는 영화가 사회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가령 왜 1960년대 초반 한국 영화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것일까? 왜 1970년대 중후반에 호스티스 영화가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왜 1980년대에 <애마부인> 시리즈가 등장했을까? 왜 아이엠에프(IMF) 구제 금융이 도입된 1998년에 가부장을 버리는 여성의 이야기 <정사>가 개봉된 것일까? 이 책은 필름이라는 형태로 영화가 존재하는 1936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개봉된 한국 영화를 통해 지난 80년의 한국 사회와 영화의 관계를 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분석해나간다.


    둘째, 당대 담론과 영화 재현과의 관련성을 파악한다. 영화는 당시 대중들이 원하는 상을 스크린에 옮겨놓는데, 당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만들어내는 담론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가령 신여성 담론이 일고 여성에 대한 시선이 많이 열려 있던 1920년 중후반에 비해, 점점 보수화되던 1930년대 중후반에는 신여성의 일탈을 비판하면서 현모양처 담론이 등장한다. 당시 사회 담론은 일간지와 월간지를 통해 대중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전쟁 동원의 시기에는 전쟁 동원 담론과 그것을 스크린에 재현한 영화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진다. 이런 시기에 신여성의 일탈을 비판하는 <미몽-죽음의 자장가>가 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 담론과 영화 재현은 1950년대 중후반이 되면 그대로 재생되듯이 이어진다. <자유부인>은 <미몽>의 다른 버전이다. 이렇게 보면, 1930년대 신여성 담론과 1950년대 자유주의, 개인주의 담론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부분들에 주목해 어떻게 사회 담론과 영화적 재현이 길항하는지 분석해나간다.


    셋째, 가족이 얼마나 치열한 헤게모니의 장이었는지 파악하고, 무엇보다 기존의 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난 후의 대안 가족에 대한 방향성을 모색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족 제도가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워낙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우리 사회의 가족 제도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 예측해볼 수 있다. 가부장제의 단점을 넘어선 현재의 영화에는 다양한 대안 가족들이 등장한다. 여성 공동체, 대모 가족, 일처다부제, 동성애 가족, 비혈연 가족 등과 같은 대안 가족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들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분석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가족 형태를 전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기존 연구의 미비점들을 채워나간다. 이제까지 영화 속 가족을 연구한 연구자들은 꽤 많았다. 일제 강점기를 연구한 이들도 있고, 1950년대를 연구한 이들도 있으며, 1960년대, 최근 영화에 나타난 가족을 연구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사 전반에 걸쳐 가족과 여성, 젠더, 세대교체 등에 대해 연구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작업은 영화사가의 넓은 시각과 영화 비평가의 해석력이 적절히 결합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이 글쓰기 시도는 비평가로서의 과감한 도전과 문화 연구자로서의 근기 있는 천착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의 진화론
    가부장제와 혈연주의 넘어서기


    한국 가족 제도라는 시각에서 지난 100년간의 한국 영화들을 살펴보면, 결국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제도에서 기인한 남성 중심의 폭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성적인 차원으로 좁히자면, 남성 중심의 폭력과 간섭,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성들의 반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작품명으로 풀이해보자면, <미몽>의 반복적 재현 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의 연이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몽>은 일제 강점기에는 도저히 등장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유교적 영향력이 여전한 나라에서 어떻게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와 가출, 일탈을 그린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당시 부상한 신여성 담론과 자유 연애론에 입각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그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오히려 영화가 상영될 시점에는 현모양처 담론이 강화되고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거꾸로 <미몽> 개봉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즉, 신여성 담론을 타락한 여성 담론과 동일시하면서 경계하고자 하는 의도가 <미몽>에 담겼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의도 때문에 지금 봐도 충격적인 여성 일탈이 감행될 수 있었고, 이에 맞춰 강력한 처벌도 수행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영화 직후 일제의 병참 기지로 변한 조선의 사정을 고려해, 군국주의를 체화한 가족이 등장하거나 황군의 사명을 영광으로 아는 젊은 남성들의 영화가 연이어 등장하게 되었다. 천황제 가족주의가 조선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제 여성은 현모양처를 넘어 총후 부인이나 군국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흥미롭게도 해방 후에 다시 <미몽>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본이 물러간 자리를 차지한 미군은 개인주의와 근대화의 문물을 지니고 조선 땅에 들어왔다. <자유부인>은 그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가장이 있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던 여성이 외부에서 일을 하면서 바람이 나지만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미몽>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과오 때문에 딸이 죽자 자살하고 마는데, <자유부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아들이 눈물로 그녀를 붙잡으면서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미국의 문화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바람난 부인을 처벌하고 뉘우치게 할 만큼 유교적 질서는 여전히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르게 보면, 여성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여전히 모성 이데올로기이며, 역으로 이 이데올로기를 저버린 여성은 마땅히 처벌 받아야 한다는 프레임이 공고화된 시대였다. 이 프레임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가족 희극 영화에서 구세대는 근대화의 흐름을 이끌어갈 수 없는 낡은 세대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신세대에게 밀려났다. 이때 등장한 신세대는 주로 아들과 사위로 구성된 남성들인데, 이들은 박정희 군부 정권과 결탁해 새로운 가부장이 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집안의 가장이 된 새로운 세대가 얼마나 확고한 가부장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젊은 시절 바람이 나서 낳은 아들을 남성은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지만, 두 여성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남성에게 속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은 아이와 두 엄마 사이에서 발생하고 아버지는 갈등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강한 가부장의 시대는 1970년대의 호스티스 영화, 1980년대의 성애 영화로 무한 증식하면서 여성을 성적 상대나 관음의 대상으로 그리도록 했다. 한국 영화사 가운데 가부장제가 가장 확고했던 시대를 꼽으라면, ‘1970~80년대’를 거론해야 한다. 이 시기는 군부 정권이 강한 힘을 발휘했던 시기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수직적인 명령 체계로 국가와 사회가 지탱됐다. 이런 시기에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되거나 동원된 일꾼이 되어야 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애마 부인>은 <자유부인>보다는 <미몽>에 가깝다. 바람을 피운 부인은 남편에게 사죄하거나 스스로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정부와 남편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갈등한다. 이렇게만 보면 <애마 부인>은 한국 영화사에서 혁신적인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애마 부인>은 남성의 관음증 범위 내에서만 작동한다. 그녀는 철저하게 남성의 손길에서 성을 느끼고 흥분한다. 그녀는 남성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심지어 강간을 당하면서도 흥분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났음에도 남편에게로 되돌아간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가정을 무시하던 사람이었다. 결국 <애마 부인>은 <미몽>에서 시작해 <자유부인>으로 엔딩을 장식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정사>야말로 ‘혁명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 와서야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진정으로 실천한다. 고분고분하게 자란 여성은 의외로 늦게 찾아온 사랑과 진실하게 대면한다. 그 결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유한 환경,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등을 모두 거부한 채 집을 나오고 만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부와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모성 이데올로기를 모두 버리고서. 한국 영화사는 이 영화에 와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모성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났음을 알린다. 즉, <정사>는 <미몽>, <자유부인>, <애마 부인> 등의 한계를 벗어난다. 여성은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고, 누구의 부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개인이 된 것이다.


    가부장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을 그리려면 먼저 가부장을 스크린에서 죽이는 영화가 등장해야 한다. <바람난 가족>이 그 역할을 했다. 가족이 전부 바람이 났지만 죽어가는 가부장은 더러운 피를 토하면서 자신의 한계에 직면해야 한다. 그는 이제 권력도 별로 없고 육체적 힘도 없고 수명도 다해간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던 부인은 새로운 연인을 만나 연애에 빠져 있고, 며느리도 아들 몰래 임신을 했다. 정작 바람을 피우고 있던 아들은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게 되고, 나중에는 정부에게도 차이고 만다. 무엇보다 아들은 며느리에게도 버림받는다. 가부장은 죽고 아들은 이혼을 당해 홀로 살아가지만, 부인은 새로운 출발을 하고 며느리도 새롭게 애를 키우며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가부장은 죽었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스크린에서 ‘여성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다처제를 뒤집어 일처다부제를 그린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보여주던 일부다처제가 무너진 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일처다부제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대모 사회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혈연주의의 강고한 집착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가부장의 혈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이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결혼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혈연주의를 확인한 뒤에야 안심을 하고, 그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이것은 영화의 한계인가, 현실의 한계인가?


    <가족의 탄생>은 혈연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려고 한다. 혈연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이기주의와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혈연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성이 배제되고 여성이 부드러운 엄마의 기능을 하는 가족을 만들었는데, 영화 속에 그려진 가족은 그들이 기른 딸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엄마들의 습성을 지닌, 매우 다정다감한 인물로 재현된다. 그런 여성들의 심성은 헤픈 것이 아니라 정이 많은 것이다. 거친 남성들이 도저히 만들지 못하는 가족을 여성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여성 공동체면서 대모 가족이다. 이래저래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대안 가족은 여성이 중심이 되는 가족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는 동성애 가족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지독히도 강한 동성애에 대한 혐오 속에서 동성애 커플은 부모를 속이고 동료들을 속이면서 거짓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와서야 판타지에 가까운 스타일로 동성애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마이 페어 웨딩>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의 실제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들의 결혼식이 얼마나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거꾸로 말하면) 그 고단한 과정을 넘어 결국에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개최하는지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동성 간 결혼은 합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렇게 지금 한국 영화는 가부장제를 넘어서고 혈연주의도 넘어섰다. 여러 대안 가족을 모색하면서 어떻게 하면 수직적 가족 관계를 벗어나 수평적 가족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시발점이 <미몽>이었고, 다음이 <자유부인>이었다. 이후 영화들은 가부장 질서와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두 편의 영화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려 했고, 드디어 <정사>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한 가족주의의 잔영, 천만 영화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최근 십수 년간 유독 천만 관객 이상이 상영관을 찾은 이른바 흥행작들은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 담론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그 속에서 기존 제도의 문제를 비판하고 가족 해체, 나아가 대안 가족을 주장하는 기류는 제대로 감지되지 않는다. 즉, 아직 우리 사회는, 천만 영화는 변화보다 가부장적 관성에 익숙하다. 필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족이라는 프리즘으로 천만 영화를 분석해봄으로써 천만 영화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이라는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바라본다.


    천만 영화들이 꾸준하게 다루었던 소재는 아버지의 부재다. 이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해운대>, <도둑들>,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 <택시 운전사>, <신과 함께>등 천만 영화 가운데 절반이 넘는다. 이 영화 속 아버지들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해도 정상적이지 않다. 영화는 먼저 아버지의 부재를 최대한 부각시켜 슬픔의 정서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심지어 어머니의 형상마저 약화시켜 아버지의 부재를 더 두드러지게 만든다. 가족의 중심은 여전히 아버지로서, 그런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으니 슬픔의 정서가 영화 속을 감돈다.


    또한 천만 영화는 심부에 깊숙이 내장해둔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신파적 정서가 넘치는 비극으로 재현한다. 이는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족/개인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 방기와 그 원인이 맞닿아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니 가족주의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필자는 가족 해체와 대안 가족을 모색해온 한국 영화의 진로에 역행하고 있는 천만 영화의 현상을 문제적으로 진단해본다.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강성률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다.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영화제 심사를 했다. 사회와 역사를 잘 담으면서 스타일적으로도 신선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많다.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욕망이 여전히 강하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영화 색채 미학』(2017), 『영화 비평_이론과 실제』(2016), 『여행은 아빠의 방학 숙제다』(2015), 『한국의 영화감독 4인을 말하다』(2015), 『은막에 새겨진 삶, 영화』(2014), 『감독들 12』(2012), 『친일 영화의 해부학』(2012), 『영화는 역사다』(2010), 『한국 영화, 중독과 해독』(2008), 『친일 영화』(2006),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2005) 등이 있다.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책을 열면서
    |프롤로그|한국 영화사로 본 가족 담론과 영화의 재현


    제Ⅰ부 일제 강점기 조선 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
    |제1장| 1930년대 중반 조선 영화에 나타난 가족의 변화
    |제2장|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로 체화된 가족


    제Ⅱ부 해방 이후부터 2000년대 전후까지 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
    |제3장| 1950년대 영화의 바람난 부인과 나약한 가부장의 대결
    |제4장| 1960년대 초 가족 희극 영화에 나타난 세대교체
    |제5장| 1960년대 중반 형성된 강한 가부장제, 그 영화적 재구성
    |제6장| 1970년대 청년 영화에 그려진 좌절과 호스티스 영화의 범람
    |제7장| 1980년, 성애 영화의 등장
    |제8장| 아이엠에프 시기, 가부장 옹호의 물결


    제Ⅲ부 2000년대 이후 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
    |제9장| 2000년대 전후한 시기, 가부장의 위기
    |제10장| 가부장의 죽음
    |제11장| 첫 번째 대안 가족, 여성 공동체 또는 대모 가족
    |제12장| 두 번째 대안 가족, 일처다부제
    |제13장| 세 번째 대안 가족, 비혈연 가족
    |제14장| 네 번째 대안 가족, 동성애 가족


    제Ⅳ부 영화 흥행과 가족 재현의 관계
    |제15장| 천만 영화의 가족주의와 가부장 재현


    |에필로그| 영화에 재현된 가족과 젠더 그리고 사회
    주ㆍ참고문헌ㆍ찾아보기
    총서 ‘지의 회랑’을 기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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