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양 문학에서 희곡분야를 전공하는 필자가 순수 연극학에 전념하게 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리고 그간에 쌓은 것을 근거로 틈틈이 우리의 고유한 연극을 캐기 시작한 지도 어언 십여년이 넘었다. 혹시 남의 분야를 기웃거린다는 비방을 받을지 모르나 순수 연극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대상이 어느 나라 것이건 별로 문제될 까닭이 없다.
우리 민족은 시적 감각이 두드러져 있다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전통 문학에는 시(詩)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시(時)는 본질적으로 귀족이나 양반 계층의 표현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연극은 전적으로 서민의 생활 감정의 표현이라 하겠다. 왕조 사회의 엄격한 유교적 여건이나 일제의 침략 아래서 억눌리고 짓밟혀도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연면히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온 이들 전통 연극이야말로 오히려 민중 속에 깊숙이 뿌리박은 민족적 감각의 발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제나라 제겨레 속에서 마음껏 활개를 펴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아직도 구태의연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근자에 와서 제것을 찾는 시대적 움직임에 호응하여 얼마간의 자료의 발굴과 보존을 위한 시도가 있었을 뿐 이들 연극을 고유한 전통 연극으로서 예술적으로 정형화하기 위한 이론과 실제의 연구나 시도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우리의 전통 연극을 정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무대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순수 연극학적 입장에서 이 점에 관한 이론과 실제면의 연구를 틈틈이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 그 논문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본 것이다.한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그 나라의 연극을 보라고 한다. 그만큼 연극은 한 나라의 문화의 꽃인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가 세계의 선진 대열로 발돋움하는 이 마당에 이 책이 이들 전통 연극을 우리의 민족 문화를 상징하는 고유한 연극으로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