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라는 지역을 지식과 교류 및 소통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학술적 접근을 시도한 연구서
동아시아 역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근대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각 국가와 지역이 단절된 상태가 아닌 교류의 파트너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를 통해 매 시기 각 국가와 지역은 독자적인 형태로 그 고유의 전통을 유지 발전시켰다. 동아시아라는 공간에서 지속된 문화 교류는 문물의 교류에서 학술 사상, 그리고 제도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진행되어왔다. 물적 교류를 통해서 문화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인적 교류를 통해서는 학술과 사상의 동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특징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지식과 교류 및 소통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학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종이가 주요 서사재료로 사용되기 이전 시기, 한국에서 출토된 목간의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의 간독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지적(다이웨이홍)과 종이와 목독이 병용하던 시기에 중국 문화의 선진성뿐만 아니라 중국과 교류를 진행한 지역과 국가 역시 독자적인 성격의 고대국가로 성장 발전하였다는 지적(김경호)은 동아시아 고대사회에서 전개된 문화교류의 실상을 출토자료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또한 ‘중화(中華)’라는 동아시아 이념체제에서 조선에서도 역시 중화의 관념이 지배하였다는 지적(하영휘)과 근대의 길목에서 조선의 대표적 학자인 박규수가 청의 대표적 학자인 고염무 사당의 회제에 참여한 사실은 바로 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교류와 인식 및 상호이해가 전제되어 양자 간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여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문자와 문헌 그리고 사상으로 대변되는 지식 공간에서의 교류 못지않은 제도와 정치를 통한 교류의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13~14세기 고려와 원의 결혼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교류 양상과 문화전파의 주요 경로를 분석한 글(우윈가오와)이나 명·청조와 조선의 중앙집권적인 전제주의 재정구조하에서 군비지출 시, 명청은 중화를 이념으로 하는 책봉체제를 중심으로 천자의 군대를 유지하였다면 조선은 이러한 성격이 극도로 억제되었다는 ‘이질성’을 강조한 분석(손병규)은 조선과 명청을 비교사적 관점에서 연구한 새로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대의 접점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집중한 연구와는 달리 19세기 후반 러시아와의 이주문제를 언급한 성과는 동아시아 사회의 다원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배항섭).
한편, 종래 한국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해양’이란 공간을 통한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이해는 매우 신선한 분석이다. 사료적인 제한으로 동아시아 삼국 해양 교류의 실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음에도 춘추전국 시기 한반도와 일본과의 교류를 통한 해양 실크로드의 성격을 규명한 글(왕전중)이나 13세기 남송, 고려, 몽골, 왜 등을 둘러싸고 전개된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전쟁과 무역을 연해제치사(沿海制置使)라는 관직의 성격을 중심으로 분석한 내용 역시 교류의 또 다른 일면의 이해를 제공한(고은미). 더욱이 15세기의 조선, 명, 왜 그리고 유구(琉球)와의 국제관계를 당시 제작된 지도라는 이미지를 통해 분석한 내용(류중위)은 종래 문헌 텍스트에 집중한 연구에 비하면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측면에서의 동아시아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중국 고대사(진한사)이며, 고대 동아시아사, 출토문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연구 성과로는 「前漢時期 西域 境界를 왕래한 使者들」(2021), 「漢代 西北邊境 私信의 構造와 주요 내용」(2019), 「전한시기 『논어(論語)』의 전파와 그 내용-새로운 출토문헌 『논어』의 「제론(齊論)」설과 관련하여」(2018), 『간독(簡牘)이란 무엇인가?』(2017) 등 다수 의 논저가 있다.
책을 펴내면서
제1부 문자와 문헌, 지식 공간의 교류
한국에서 출토된 ‘량(?)’자 목간(木簡)으로 본 동아시아 간독문화(簡牘文化)의 전파?다이웨이홍
1. 머리말 18
2. 한국 목간 속의 ‘량’ 19
3. ‘량(?)’의 유래와 전파 28
4. 동아시아 간독문화의 전파 47
5. 맺음말 54
4~6세기 동아시아에서의 문헌의 유통과 확산?김경호
1. 서론 58
2. 문헌의 수요와 종이의 보급 61
3. 용서(傭書)와 판서(販書) 70
4. 문헌의 대외 유통과 공간적 확산 77
5. 맺음말을 대신하여 86
중화사상과 조선후기 사상사?하영휘
1. 머리말 90
2. 중화와 중화사상 93
3. 중화사상과 조선후기 사상사 107
4. 맺음말 114
학술적 우상과 중국-조선 간의 문화교류?린춘양
1. 머리말 118
2. 고염무의 영향과 회제(會祭) 119
3. 박규수의 학행 125
4. 박규수의 첫 번째 연행과 회제 참석 128
5. 박규수와 중국 문인들 간의 교류 137
6. 박규수의 두 번째 사행과 회제 참석 145
7. 맺음말 155
제2부 제도와 정치, 새로운 교류 공간의 형성
고려와 원의 정치적 통혼과 문화교류?우윈가오와
1. 머리말 162
2. 고려와 원의 정치적 통혼과 문화교류의 배경 163
3. 고려와 원의 정치적 통혼과 문화교류의 구체적 양상 167
4. 고려와 원의 정치적 혼인과 문화전파의 경로 177
5. 맺음말 189
책봉체제하에서의 ‘국역(國役)’?손병규
1. 머리말 192
2. ‘조공책봉체제’에 대한 문제인식 194
3. 18세기 동아시아 각국의 군비지출 비중 201
4. 동아시아 각국의 ‘국역’과 재정 시스템 209
5. 맺음말 216
19세기 후반 함경도 주민들의 연해주 이주와 트랜스내셔널한 공간의 형성?배항섭
1. 머리말 220
2. 이주민의 증가와 조선정부의 대응 222
3. 이주의 원인과 인정(仁政) 원망(願望) 239
4. 맺음말 253
제3부 열린 공간, 해양에서의 소통
산동반도 초기 해양문명과 춘추전국 시기 한중일 삼국의 해양 실크로드?왕전중
1. 머리말 262
2. 산동반도의 초기 해양문화 263
3. 해양 실크로드의 시작 272
4. 맺음말 277
13세기 동아시아의 전쟁과 무역?고은미
1. 머리말 280
2. 연해제치사(沿海制置司)의 역할 282
3. 연해제치사와 고려·일본의 관계 285
4. 몽골과의 대립과 오잠의 정책 289
5. 맺음말 295
15세기 동아시아 해양체제 속에서 조선왕조의 이미지 형성?뤼중위
1. 머리말 298
2. 명조(明朝)에 사대(事大): 정통 이미지의 확립 300
3. 혼일강리(混一疆理): 조선의 ‘천하관(天下觀)’ 정립 302
4. 교린빙문(交隣聘問): 조공체제의 모방 310
5. 맺음말 314
주석 316
참고문헌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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