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보이쩌우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潘佩珠年表〉는 한문학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가 아닐 수 없었다. 근대 초기 한문 글쓰기의 특징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거니와 필담과 한시 등을 통해 상호 소통하는 생생한 장면들은 근대한문학이 작동하는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 생각해 보면, 우리 학계에서 판보이쩌우에 대해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된 원인은 그가 한문 지식인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그의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와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한문으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는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근대한문학연구반의 시야에 포착되지 못했을 것이다. 새삼 동아시아 한문 네트워크의 깊이와 생명력을 실감하게 되는 사안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_해제 중에서
이 책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동아시아학 교육·연구기관으로서 한자문화권을 공유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역사경험과 문화체험을 비교하고 그 의미를 연구해왔다.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학계와 소통했지만, 예전 한자문화권이었던 베트남 관련 연구는 지금까지 미진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판보이쩌우 자서전을 담은 영인본과 그 해제, 판보이쩌우의 연보를 담아서 자료편을 출간하게 된 점은 따라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펴내는 이 자료집은 베트남의 독립지사 판보이쩌우(潘佩珠, 1866~1940)의 자전(自傳)이라 할 수 있는 한문 저술 “潘佩珠年表”(베트남 漢?硏究院 소장 필사본)를 영인(影印)한 것이다. 아직까지 판보이쩌우는 한국의 학계나 독서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저술한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는 일반 역사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1905년도에 중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된 『월남망국사』는 동아시아 한문 지식인들이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를 명확히 인지하고 결연히 저항에 나서도록 각성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던 기념비적 저술이다. 『월남망국사』가 이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판보이쩌우가 온몸으로 프랑스 제국주의에 저항하였던 뜨거운 투쟁의 경험이 짙게 투영되어 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월남망국사』의 저자가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로 알려져 있어 매우 유감스러운데,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베트남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던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판보이쩌우는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시기(1884-1945)에 활동하였다. 약 1900~1940년 판보이쩌우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동분서주하며 프랑스 식민통치에 항거하였다. 예를 들어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며, 민족의 독립을 이루고자 혁명 활동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 가운데 하나이다. 판보이쩌우의 일생과 업적은 베트남 학자뿐 아니라 프랑스,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대만 등 여러 나라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연구되었다. 판보이쩌우의 일대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판보이쩌우 자신이 직접 쓴 연표(潘佩珠年表)이다. 한문으로 쓰인 이 책은 1929년에 완성되었고, 판보이쩌우의 어린 시절부터 1925년에 체포되어 후에에 구금될 때까지 활동을 얘기하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의 한문본 약 20종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놈연구원에 남아있는 것이 가장 귀중한 것으로 작가의 친필 원본(기호 VHv.2138)이다. 이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베트남어로 번역된 것은 총 3종인데, 이것은 적어도 10쇄 이상 간행되었다.
그 중 1946년 최초로 인쇄된 번역본은 작품의 앞부분 삼분의 일만 번역되었다. 판보이쩌우 사후에 간행된 1956년 번역본은 전문을 번역한 것이며 판보이쩌우 자신의 번역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다. 그리고 ‘번역’임에도 여러 부분에 한문 원문이 보충되어 있다. 해외에서는 Georges Boudarel(Paris, 1969)의 프랑스어 번역판, V?nh S?nh(Hawai’i, 1999)의 영어 번역판, Utsumi Sawako(1972)의 일본어 번역판 이외에도 러시아어와 체코어 번역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