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 이원진의 태호시고(실학번역총서 11)

  • 사람의무늬
  • 인문
    • 기획도서
    • 실시학사 실학번역총서
  • 재단법인 실시학사 지음
출간일 2016-10-20
ISBN 979-11-5550-171-9 93810
면수/판형 신국판(152 X 225)·376쪽
가격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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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문고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성호학의 발원지
    태호 이원진의 문학세계


    이 책은 조선 인조와 효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인 태호(太湖) 이원진(李元鎭)의 시집 『태호시고(太湖詩藁)』를 현대어로 옮기고 원문과 주해를 단 것이다.
    태호는 실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스승이며, 경전과 자사(子史)를 비롯해 각 분야에 두루 능통한 당대의 석학으로 알려진 인물로, 유형원의 외삼촌이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당숙이 되기에 성호학(星湖學)의 학문적 연원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학계에 그에 대해 알려진 저술이 없어 그 면모를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이 책 『태호시고』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됨으로써 성호학파의 시적 연원을 구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진, 삶의 여정


    태호는 19세 때인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했고, 같은 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이때 영창대군의 옥사와 인목대비의 폐비를 주창하는 논의가 일어나자, 태호는 이에 극력 반대하다가 잠시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그의 부친 이지완은 당시 대사간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폐모론을 주창한 정조(鄭造), 윤인(尹?)의 합계(合?) 요청을 반대하며 올린 「입이계사(立異啓辭)」는 명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태호는 1630년(인조 8) 별시문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15년 남짓한 기간을 은둔하며 지내게 되는데, 아마도 이때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며 제자백가에 두루 능통한 박학한 학문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태호시고』 권1, 2에 수록된 『전고록(前藁錄)』은 이때 지어진 시편으로 이즈음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태호는 문과 급제 후 1632년 사간원 정언(正言)을 시작으로 사헌부 지평(持平)ㆍ장령(掌令), 홍문관 수찬(修撰)ㆍ교리(校理) 등의 청직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평안도 도사(都事), 순천 부사 등을 지낸다. 1639년 9월에는 성절동지사(聖節冬至使)의 서장관이 되어 정사 권대임(權大任), 부사 정지우(鄭之羽)와 함께 심양에 갔고, 이어서 동궁 필선(弼善)의 직책으로 심양에 남아 소현세자를 시종한다. 『조선왕조실록』 1641년(인조 19) 2월 5일 기사를 보면 태호의 모친상과 그의 체직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바, 태호는 이때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삼년상을 마치고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홍문관 교리, 사간원 사간 등을 지내다가 1644년 11월에 동래 부사로 임명된다. 태호가 동래 부사를 지낼 때에는 왜사(倭使) 등지승(藤智繩)이 예수교도를 방비하는 문제로 협조를 요청하는 서계(書啓)를 보내는 사건이 있기도 하였다.


    동래 부사의 직임을 마치고 조정에 돌아온 태호는 1647년부터 승지를 지냈는데, 1648년에는 전라도 함열(咸悅)로 잠시 유배 가기도 하였다. 태호가 유배 간 이유는 확실치 않은데, 『승정원일기』 인조 17년(1649)에 방면하라는 기사가 보이는 것을 보면 유배 생활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년 『조선왕조실록』 5월 6일 기사에는 약리(藥理)에 정통하다는 이유로 태호를 의관들과 함께 입시케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효종 즉위년(1649) 8월에 태호는 강원 감사에 제수되고, 연이어 2년 뒤인 1651년에는 58세의 나이로 제주 목사에 임명된다. 제주 목사로 좌천된 것은 아마도 당국자의 시기와 배척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제주 목사로 재임하고 있던 1653년(효종 4) 7월에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난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漂着)하는 사건이 일어나, 태호는 이를 처리하기도 했다. 제주목사 시절 태호는 제주도 최초의 읍지인 『탐라지(耽羅志)』를 편찬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기록과 관측의 정확성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저작으로 평가된다.


    1654년 제주 목사에서 돌아온 태호는 형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당국자의 배척과 병환으로 치사하고는 미호에 은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모두 응하지 않고, 1656년 잠시 삼척 부사를 맡았을 뿐 더 이상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현종 즉위년(1659) 효종의 산릉을 택지할 때 풍수에 해박하다는 이유로 윤선도와 함께 입궐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일 뿐이다. 이후 태호는 1665년, 72세의 나이로 운명하기까지 미호에서 은둔하며 여생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태호시고』와 성호학파의 시적 연원

     

    지금까지 태호는 반계 유형원에서 매산(梅山) 이하진(李夏鎭), 그리고 성호 이익으로 이어지는 성호학의 연원과 관련해 주목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의 박학한 학문 세계가 관심을 끌었는데, 『태호시고』에 실린 325수의 시편은 자연 경물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 목사 시절 지은 ‘수차시(水車詩)’ 외에는 박학한 학문 성향에 따라 특이한 소재를 다루었다거나, 깊은 학문적 소양에서 우러나온 철리적 내용을 함축한 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울러 사회 현실의 모순이나 질곡을 다룬 사회시 또한 전무한 형편이다. 따라서 태호의 시는 오히려 치밀하게 대구를 조직하고, 용사를 절묘하게 하면서도 이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시적 능력이 돋보여 보인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시인으로서의 예리한 감수성이 깔려 있다.


    최근에 성호의 조카이자 수제자인 정산(貞山) 이병휴(李秉休)의 시 세계를 ‘담담한 학자풍의 시’로 본 기존 연구에서 벗어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시인적 면모’에 주목한 연구가 제출되기도 했다. 태호의 시가 지니는 치밀한 조직력과 예리한 감수성으로 미루어볼 때 이병휴는 학문적으로는 성호를 충실히 계승하였지만, 시적 전통에 있어서는 태호에 맥락이 닿아 있어 보인다. 이 문제는 향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해명될 문제이거니와, 이번 『태호시고』의 번역본 출간은 성호학파의 시적 연원을 구명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은이 |


    ? 태호(太湖) 이원진(李元鎭)   
    1594(선조 27)년에 태어나 1665(현종 6)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이다. 경전과 자사(子史)를 비롯해 각 분야에 두루 능통한 당대의 석학이었다.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柳馨遠)의 외삼촌이자 스승이고, 성호 이익(李瀷)의 당숙이기도 하다. 때문에 성호학(星湖學)의 학문적 연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문과 급제 후 1632년 사간원 정언을 시작으로 홍문관 수찬과 교리 등의 청직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평안도 도사, 순천 부사 등을 지냈다. 1639년 성절동지사(聖節冬至使)의 서장관 자격으로 심양에 갔고, 동궁 필선의 직책으로 심양에 머물며 소현세자를 시종하였다. 이후 1644년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고, 1647년부터 승지를 지냈는데, 1648년에는 전라도 함열로 잠시 유배 가기도 하였다. 1649년 강원 감사에 제수되고, 1651년 제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제주 목사 재임 시절인 1653년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漂着)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잘 처리하였다. 또한 제주도 최초의 읍지인 『탐라지』를 편찬하였다. 1654년 형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당국자의 배척과 병환 때문에 치사(致仕)하고 미호에 은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모두 응하지 않고, 1656년 잠시 삼척 부사를 맡았을 뿐 더 이상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1665년 72세의 나이로 운명하기까지 미호에서 은둔하며 여생을 마친 듯하다. 『태호시고』에 실린 시편들 가운데 자연 경물을 노래한 것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작품의 수준 또한 상당히 높다. 이는 문학적 감성을 지닌 태호의 시인적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태호는 박학다식한 학자일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옮긴이|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이우성?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세호?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수료
    김영진?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김용태?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김종민?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수료
    서경희?성균관대 학부대학 강사
    손혜리?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신익철?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윤세순?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학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이라나?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수료
    이성민?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이현우?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 수석연구원
    전수경?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원
    하정원?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수료
    한영규?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헌창?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임부연?서울대 종교학과 강사
    전성건?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함영대?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재단법인 실시학사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공익 재단법인이다. 다양한 학술 연구와 지원 사업, 출판 및 교육 사업 등을 수행하며, 실학사상의 전파와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 1990년부터 벽사 이우성 선생이 운영하던 ‘실시학사’가 그 모태로, 2010년 모하 이헌조 선생의 사재 출연으로 공익 법인으로 전환되었다.

    경학 관계 저술을 강독 번역하는 ‘경학연구회’와 한국 한문학 고전을 강독 번역하는 ‘고전문학연구회’라는 두 연구회를 두고 있으며, 꾸준하게 실학 관련 공동연구 과제를 지정하여 그에 맞는 연구자들을 선정?지원함으로써 우수한 실학 연구자를 육성하고 연구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번에 상재하는 ‘실시학사 실학번역총서’도 그의 소산이다. 앞으로 아직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실학자들의 문헌을 선별해 오늘날의 언어로 옮기며, 실학의 현재적 의미를 확인해 나갈 것이다(홈페이지 http://silsihaksa.org).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 간행사 ? 실학번역총서를 펴내며
       ? 『태호시고』 해제 

    Ⅰ. 『태호시고(太湖詩藁)』 권1
    「전고록(前藁錄)」 상(上)

    Ⅱ. 『태호시고(太湖詩藁)』 권2
    「전고록(前藁錄)」 하(下)

    Ⅲ. 『태호시고(太湖詩藁)』 권3
    「동행록(東行錄)」 신미(辛未)
    「춘방록(春坊錄)」 임신(壬申)
    「관서록(關西錄)」 임신(壬申)
    「옥당록(玉堂錄)」 상(上) 계유(癸酉)

    Ⅳ. 『태호시고(太湖詩藁)』 권4
    「평양록(平陽錄)」 병자 이후(丙子以後)
    「미호록(迷湖錄)」

    Ⅴ. 『태호시고(太湖詩藁)』 권5
    「옥당록(玉堂錄)」 중(中) 기묘(己卯)
    「서행록(西行錄)」 기묘(己卯)
    「옥당록(玉堂錄)」 하(下) 경진(庚辰)

    Ⅵ. 『태호시고(太湖詩藁)』 권6
    「봉래록(蓬萊錄)」 을유 이후(乙酉以後)
    「은대록(銀臺錄)」 병술 이후(丙戌以後)

    Ⅶ. 『태호시고(太湖詩藁)』 권7
    「용산록(龍山錄)」 무자 이후(戊子以後)
    「용산록(龍山錄)」 기축 환조후(己丑還朝後)
    「관동록(關東錄)」 경인(庚寅)

    Ⅷ. 『태호시고(太湖詩藁)』 권8
    「탐라록(耽羅錄)」 신묘 이후(辛卯以後)
    「귀산록(龜山錄)」 갑오 이후(甲午以後)
    「진주록(眞珠錄)」 병신(丙申)
    「사정록(?亭錄)」 정유 이후(丁酉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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