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유학(儒學)은 거창한 이념인 양 위세를 드러내 추상적으로 있지 않았다. 비범인의 삶 속에서든 속인의 편편한 일상에서든 공히 실천하며 누리는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이 책은 유학의 고전인 『논어』『맹자』『대학』『중용』의 사서 안에 담긴 살아 있는 유학의 문장들을 추려내어, 오늘날 우리네 삶의 전면에 비추어 보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성찰들로 다시 풀어낸 것이다. 학문?처세?정치?인생?인륜?의리?사랑?수양?도덕 등 다양한 삶의 키워드들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진솔한 유학의 언어로 재해석된다.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에서 유교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전통의 향기」라는 엽서글들을 다듬어 엮은 것으로, 우리나라 유교 연구를 대표하는 이들이 다수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사람의무늬[人文?人紋]’가 펴내는 ‘동양 고전 다시 읽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유학의 문장을 읽는다
이 시절에 되새겨 보는, 진솔한 ‘유학의 아포리즘’
유학은 사실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주 퇴행과 수구의 둥지라 비판받곤 하지만, 유학은 어쩌면 살아 있는 세상에다 대고 가장 할 말 많은 이야기들의 원천이다. 삶의 해법들이 나타나지 않을 때 번뜩이는 통찰을, 사람 냄새 사라져 각박해진 곳에 넉넉한 인정을, 제 논에 대기 위해 물길을 바꾸려는 파렴치들에게는 날카로운 비판을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에게는 공동체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려는 것이 본디 유학이 설계하는 비전이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으뜸[宗敎]’으로 꼽히는 인류의 사상들 중에서 유교와 유학은 가장 현실에 밀착한 종류인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나라 유교 연구를 대표하는 79인의 필자들은 각자 유학의 고전들 중에서 149편의 명문장을 골라 뽑아 곱씹어 살을 붙이고, 이를 삶의 지혜와 온기를 담은 유학의 아포리즘으로 정리해 놓았다. 여기에 소개된 유학의 문장들은 소박한 인간의 성정(性情)으로도, 때론 강렬한 시대적 반향으로도 그리고 보편적인 인류의 지혜나 절절한 인심의 위무(慰撫)로도 읽힌다. 독자들은 여기 모인 다양한 필자만큼 유학의 고전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곁에 두고 읽는 유학의 명문장들예로부터 『논어』『맹자』『대학』『중용』은 학자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꾸준히 좋아하는 책이었다. 좋은 책은 보물처럼 혼자 숨겨서 읽을 것이 아니라 공유물처럼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에서는 유학의 고전에 나오는 좋은 구절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통의 향기」라는 엽서글을 발행해 왔다. 한 달에 두 번 고전의 원문을 번역하고 해설한 글을 온라인과 오픈라인을 통해 게시해 온 것이다.
엽서글이 벽면에 게시된 엘리베이터 안이나 홈페이지 등에서 고전의 짧은 구절을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바쁜 일상 중에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그때 성현 공자와 맹자를 위시한 그의 제자들의 나누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아니었다. 이처럼 고전은 편편히 우리네 삶에 가깝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이렇게 기획되었다.
■ 엮은이 | 유교문화연구소
유교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이념과 문화를 탐구하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설립되었다. 그간 ‘유교와 사회과학의 만남’이라는 주제 하에 사회학, 경영학 등 여러 학문 분야와 소통하면서 유교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사서삼경을 번역해 낸 ‘유교경전번역총서’와 유교문화 전반에 걸쳐진 문제들을 폭넓게 탐색해 낸 ‘유교문화연구총서’도 모두 이의 소산이다.아울러 유교문화의 대중화에도 힘써, 전문 연구자가 주관하는 대중인문학 강좌, 유교문화 공모전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와의 공동 작업 등 유교문화의 저변 확산에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에 상재하는『유학의 문장을 읽는다』 역시 이러한 실천의 한 시도로서, 일반인들이 전통의 삶과 유교문화를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 책 속에서
■ 맞고 틀림 혹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능동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 불과하다. 반면 스스로 생각만 할 뿐,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배우는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것 또한 문제다. 검증받지 못한 주장은 때로는 주관적 편견이거나, 학문적 체계가 결핍되어 위태롭기 때문이다. 두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새처럼, 배움과 생각 사이에 균형을 잃지 않는 자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 아닐 수 없다.|제1장 『논어』「위정」, ‘배우고서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롭다’ 중에서
■ 근래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충심 어린 존경 혹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각별한 사랑이 간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낸 학비만큼 배우면 된다는 잘못된 자본주의의 병폐를 습득하여 스승의 존재를 지나가는 범부처럼 여기는 경우가 허다한 듯하다. 또한 제자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어 그저 월급쟁이로 전락한 스승도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에게 스승이 없다면 평생 어둠 속에서 헤매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가 없다면 과연 학문을 누구에게 전수할 수 있겠는가?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인을 양보하지 않는 마음으로 서로를 성장시킨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되지 않을까?|제18장 『논어』「위령공」, ‘인에 처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중에서
■ 독침을 가진 수만 마리의 꿀벌을 여왕벌 한 마리가 거느릴 수 있는 것은 여왕벌이 독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침이 강력한 힘을 상징한다면, 그 힘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바로 포용력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제38장 『논어』「안연」,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므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에 따라 눕게 된다’ 중에서
■ 맹자는 운명보다 현실적인 환경, 즉 땅의 유리함을 강조했다. 전투장비?보급 등과 같은 여건은 전쟁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중시한 것은 인간들의 마음이었다. 이를 화합시키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결국 인간들의 노력 여부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제40장 『맹자』「공손추 하」, ‘하늘의 때는 땅의 이로움보다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들의 화합보다 못하다’ 중에서
■ 군주(정부)는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사직(국가) 역시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백성이 국가의 주체이다. 군주는 국가의 안전을 위협할 수 없고, 백성의 이익을 해치는 일은 더더욱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가 실정하여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우면 당연히 군주를 폐하고 새로운 현자를 군주로 옹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국가)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말의 현대적 의미이다.|제42장 『맹자』「진심 하」,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 중에서
■ 윤동주는 「서시(序詩)」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읊고 있다. 진정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 우리는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맹자가 주장하는 ‘부끄러움의 미학’의 핵심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강한 메시지이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이미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부끄러워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해 나간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죄책감도 없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정말 겁나는 사람들이다.|제84장 『맹자』「진심 상」, ‘사람이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을 부끄러워하면, 결국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중에서
■ 우리는 흔히 유학을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만 보기 쉽다. 유학이 인간학의 특징을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유학이 자연이나 사물관계에서 인간 독존(獨尊)의 질서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만을 위해 이 세상이 존재하고 모든 동식물과 자연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제107장 『중용』, ‘만물이 함께 길러지면서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도가 함께 행해지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 유학에서는 윤리와 경제의 관계를 본말(本末)로 이해한다. 즉 윤리를 근본, 경제를 윤리 다음이라고 본다. 그러나 유학은 윤리만을 중시하고 경제를 무시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유학은 윤리와 경제의 구족(具足)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제134장 『대학』,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 백성을 다투게 하여 빼앗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