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암 유수원과 『우서(迂書)』의 개혁론농암(聾庵) 유수원(柳壽垣)은 비교적 늦게 실학자의 대열에 합류한 인물이다. 『우서(迂書)』가 1960년대 말에 와서야 그의 저술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서』는 조선 후기 사회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투철한 견해로써 학계에 일찍부터 알려졌다. 다만 그 저자가 누구인지 몰라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저자가 밝혀지자 『우서』에 실린 개혁론에 대한 연구는 본격화된다. 이를 통해 그 개혁론의 내용이 사족지배체제에 토대를 둔 조선사회 전체를 흔들 만큼 혁신적이고, 국가경제와 민생안정의 방법으로 제시한 상공업진흥론이 같은 시대의 어떤 학자의 주장보다도 독창적이라고 말해지면서, 저자인 유수원도 단번에 실학의 이용후생적 측면을 대표하는 북학파의 선구로서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이 책은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실시학사가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발간하는 ‘실학연구총서’의 여덟 번째 책으로서, 농암 유수원과 그의 문제작 『우서』를 정치?사회신분?상업?농업?교육의 다섯 분야로 나누어 심층 탐색한 결과물이다.
/ 각 논문의 개요
정만조의 「농암 유수원의 생애와 정치개혁론」은 그 개혁론의 배경 이해를 위해 자료를 더 보강하여 그 생애를 재구성하고, 지금까지 단일 주제로는 연구되지 않았던 정치적 측면을 다룬 것이다. 여기서 그의 학문이 큰할아버지인 유상운(柳尙運)에게 배우고 현실과 실리(實理)를 추구하는 남구만(南九萬)과 윤증(尹拯) 등 소론의 학풍과 부국안민에 주력하던 김육(金堉)의 경세론(經世論)에 연원하였음을 밝혔다. 또 『우서』가 임금을 비롯한 당시 사대부층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조 13년 일시 집권한 소론이 『우서』를 통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그의 관제개혁안은 정책에 반영될 정도로 결실을 맺지만, 그러나 그에 따른 명성은 오히려 그 정치적 전도에 족쇄가 되어 노론의 엄중한 감시 하에 결국 역모혐의로 처형된다고 보았다.
김성우는 「조선시대 사회구조의 변화와 유수원의 신분제 개혁론」에서 유수원이 구상하였던 사회신분제 개혁론의 특징과 그 한계를 함께 검토하였다. 이 논문에 의하면 유수원은 사회적 병폐를 불러오는 기본요인을 사족(士族)의 자폐적(自閉的) 엘리트로의 전환과 문벌사회 형성으로 진단하고, 그 해결책으로서 사민분업(四民分業)의 실현에 의한 양천제(良賤制) 사회구조의 회복에 따른 사족의 상업종사 허용을 주장했다고 한다. 직업의 평등과 이동을 보장하는 사민분업이 이루어지면 사족이면서도 상업을 꾸려가는 계층, 곧 사상층(士商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이 ‘사상층’의 존재는 종래의 연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헌창은 「『우서』 경제사상의 기본구조」에서 『우서』에 나타난 유수원의 경제사상을 상업론을 중심으로 그 사상적 토대와 경제논리를 추출하고 이를 오늘날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그의 경제사상은 우선 주자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유학사상의 기본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며 때로는 관자(管子)?한비자(韓非子)의 주장까지 수용하는 열린 자세의 경세관(經世觀)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그 위에서 전개된 개혁론의 기본원리는, 부(富)의 긍정과 경제합리주의, 물질적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인간관으로서 유학의 약점을 보완한 가난의 문제의식과 부국론(富國論), 사회적 분업과 직업제의 확립?기술도입?상업자본과 교육을 통한 상업인구의 축적?제도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발전의 원리, 영리 추구의 긍정과 사족(士族)의 상업종사를 통한 전통적 농본주의의 극복, 시장?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및 도시문화의 옹호, 재정과 세원(稅源)?시장을 통한 재분배의 국가적 경제관리 등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제논리는 오늘날의 상업원리와 상업세 제도를 논한 데 해당하며 상학(商學)을 정립하려고 한 시도로서, 그런 면에서 그의 개혁론은 시민혁명 이전의 유럽 중상주의자(重商主義者)의 구상에 가깝다고 평가하였다.
김태영은 「『우서』의 농정론(農政論)」에서 농업분야에서 드러나는 유수원의 개혁론을 다루었다. 유수원은 흔히 상공업을 통한 경제개혁을 추구한 실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농업 또한 국가의 독자적인 산업분야로 탄생시켜 농?공?상업이 병진(竝進)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농업 진흥 방안으로 중국으로부터 농법과 농사기술의 도입, 중국 제도에 따른 일종의 가호별(家戶別) 종합소득세 성격의 수세 방안 제시, 모든 전토(田土)를 호조(戶曹)에 귀속시키는 국가재정의 일원화, 전결의 숫자를 한번 정해 놓고 항구적인 기준으로 삼는 액전법(額田法)의 도입 등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특히 두 번째의 가호별 수세는 균요전(均.錢)?균요미(均.米)와 잡부(雜賦)를 일괄 타결하는 방안으로 세의 징수를 통한 균산(均産)을 도모하는 독특한 정책이어서 이채롭다고 하였다.
정순우는 ?유수원의 과거제 및 학교제도 개혁론?에서 유수원 개혁론의 사상적 기반에 대한 탐색부터 출발하였다. 그 결과 실용성(實用性)?공리성(功利性)?사회관리능력을 중시하는 순자(荀子)의 법치적(法治的) 사고와 양명학파(陽明學派)의 신사민론적(新四民論的) 요소가 그 토대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의 개혁안이 영조 대의 교육정책을 배경으로 하여 학교?과거제의 일원화 원칙 아래 양인을 양성함으로써 양반관료제의 기본 틀을 바꾸고자 한 것으로, 이를 위해 명(明)의 생원제(生員制)를 모방한 학생정원제로써 무분별하게 늘어난 사(士)의 범위를 확정하고, 거인(擧人)과 공거제(貢擧制)로써 과거제를 보완하려는 방안이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개혁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사민(四民)의 자제(子弟)는 누구나 재능에 따른 교육을 받아 과거에 응시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과, 고퇴생원(考退生員)을 평민이 되게 한 제도로서 조선 신분제의 근간을 흔드는 혁명적 발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안은 시행을 뒷받침할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그가 모델로 삼은 명대(明代) 학제?과거제가 청초(淸初)의 학자들로부터 비판받았던 점을 보면 그 현실성에 의심이 들지만, 평민의 삶을 회복시키고 실사(實事)?실정(實政)에 근거했다는 면에서 위대한 지적(知的) 실험이었다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 실학연구총서를 펴내며...
지금 여기, 실학의 의미를 되묻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실학’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근대’에 대한 반성에 수반하여, 실학이 단지 근대 국가를 지향하던 시기에 지식인들의 한시적 관심 위에 구성된 허구적 가상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인 연구의 심화에 따라, 실학자들의 경학 혹은 자연학 상의 학술적 성취에 대해 회의적 견해가 표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 앞에서 연구자들은 다시 한 번 실학 연구에서 실학의 ‘태도’와 실학의 ‘방법’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즉 실학자들이 취하였던 개혁적이고 실천적인 태도와 관심, 개방적 실용주의의 관점, 그리고 실사구시의 정신 등이 그것이다. 그것은 곧 실학에서 근대학문으로 이어지는 우리 학문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구성해내는 길이 될 것이다. 실학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결국 실학에 대한 더욱 견고하고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될 것이다.
1946년 경상남도 진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17~18세기 書院`祠宇에 관한 硏究: 특히 士林의 書院 建立 活動을 中心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5년 현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시대 서원 연구》, 《조선시대 경기북부지역 集姓村과 士族》(공저), 《한국역사상 관료제 운영시스템에 관한 연구》(공저)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英祖대 초반의 政局과 탕평책의 추진”, “조선시대 書院志 體例에 관한 연구”, “조선시대의 사림정치 반란인가 혁명인가” 등이 있다. 관심분야는 조선시대 서원과 정치사이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개항기 시장구조와 그 변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한국경제통사』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박제가』 『서울상업사』(공저), 『이재난고로 보는 조선 지식인의 생활사』(공저) 『류성룡의 학술과 사상』(공저) 등이 있다.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