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도서

주자학과 일본 고학파

  • 출판부도서
  • 인문
  • 임옥균 지음
출간일 2012-12-07
ISBN 978-89-7986-966-6
면수/판형 신국판(152 X 225)·360쪽
가격 20,000원
2013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종이책구매
바로가기
  • yes24
  • 알라딘
  • interpark
  • 교보문고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한당 유학과 원시유학에서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측면에 대한 비판 근거를 찾은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 등의 17, 18세기 일본 고학파 유학자들의 사서 해석에 관한 연구서!

     

    지은이의 주 관심 분야는 한·중·일 유학의 비교연구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사상에 대한 연구가 특히 부족하다고 생각해 최근 몇 년간 일본 사상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이 책은 가장 일본적인 사상을 전개했다고 생각되는 고학파, 그 중에서도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의 저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책의 출간의의

    주자 이후의 학자들은 주자의 생각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간에 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동양에서 주자학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한국이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 형이상학적, 내면적, 심성론적 측면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한다면, 일본은 한국과 달리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내면적 측면은 비판하면서 실용적, 외재적 측면을 핵심으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학자들은 주자학의 일본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 고학(古學)을 발전시켰다. 고학이라는 말 자체가 유학의 장구한 흐름에서 ‘신학(新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자학을 넘어선다는 그들의 지향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고학파 학자들은 단순히 옛날의 학문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주자학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고학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책은 위와 같은 기본 관점 아래 일본 고학파의 대표적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의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 해석을 주자와 비교함으로써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일본사상 연구에 경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최초의 연구서라고 할 만하다. 지은이가 소라이의 <논어징> 번역에 참여해 완간한 경험이 이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12세기에 막부정권이 세워지고 천황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견지된 이래로 일본사를 주도한 것은 사무라이였다. 사무라이는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이었으므로 유학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전국시대를 끝내고 거의 3세기간이나 지속된 에도 시대의 안정된 중앙집권적 막부 권력 아래서 전쟁은 더 이상 사무라이들의 필수적인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막부 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필요한 것은 행정을 담당할 관료 집단이었지 무사 집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상징적으로 여전히 칼을 찼으나, 유학의 소양을 익혀 행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나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발탁된 유학자 하야시 라잔(林羅山)과 그의 가문은 도쿠가와 가문을 대대로 섬기면서 유학이 에도 시대의 관학으로 성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691년에는 성당(聖堂)을 설립해 공자를 제사 지내고 유학을 가르쳤으며, 일반인에게도 유학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관학이라고는 하지만, 관리의 선발을 유학의 소양에 의해 하지 않았으므로 한계가 있었다. 즉, 유학의 소양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교적 의례가 사회에 거의 정착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성당이 설립된 지 한 세기가 지나서야(1790년) 도쿠가와 막부의 공식 학교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유학이 그 시대의 주도적 사상이 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시험의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주자학을 받아들인 일본의 학자들은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측면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그 비판의 근거를 주자학 이전의 한당 유학,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 원시유학에서 찾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을 지녔던 일군의 학자들을 고학파(古學派)라고 부른다. 야마가 소코(山鹿素行, 1622~1685),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1728)가 그 대표자들이다. 진사이는 천도와 인도를 명확하게 나누어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우주론을 인성론으로부터 독립시켜 기일원론적 우주론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기일원론적 우주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리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완전히 부정하고 리를 기의 조리일 뿐이라고 했다. 또한 주자학의 중요한 주장 중의 하나인 본연지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질지성만을 인정했다. 한국의 이황이 주자학을 내면적 경(敬)으로 재집대성했다면, 진사이는 경을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경으로 전환시키고 수양론의 핵심을 성실[誠]에 두었다. 결국 진사이는 현실·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주자학을 수용하고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현실·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비판하고 일본적 유학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소라이에 와서 그 최종적 결실을 맺는다. 우선 소라이는 유학이 성립된 이래 분리된 적이 없던 도덕과 정치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 유학의 목적은 천하를 평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지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개인의 도덕적 수양은 천하를 평화롭게 하기 위한 정치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입장에서 소라이는 도(道)란 바로 정치를 위한 예·악·형·정인 것이지, 주자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위한 형이상학적 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 개인의 도덕적 지향성을 부정하고 외적 강제력이 있는 예를 가지고 인심을 객관적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라이의 정치사상을 예치사상이라고 부른다. 고학파의 형성으로 주자학을 현실·실천적으로 정리한 이후, 일본의 사상계는 실학이 발전하고, 주자학을 벗어나 일본 고유의 학문에 관심을 가져 국학을 성립시켰으며, 서양의 학문이 동양보다 우수하다고 인식해 서양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난학(蘭學)이 유행했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성공적으로 수용하는 데 도움을 주어, 동양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임옥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철학박사)하고 성균관 한림원 학정·한림계제를 수료(한문 연수). 서일대학 교양과 상임강사(동양철학) 및 중국 산동사범대학 한국어과 한국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조교수, 성균관 한림원 강사, 동덕여자대학교 강사이다.

  • 책소개 작가소개 목차 미디어서평
  • 지은이의 말

    제1부 도론

    제1장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특징

    제2장 한국과 일본의 주자학 수용의 특징

     

    제2부 《대학》 《중용》 해석

    제1장 《대학》 해석

    제2장 《중용》 해석

     

    제3부 《논어》 해석

    제1장 주자와 이토 진사이의 《논어》 해석

    제2장 주자와 오규 소라이의 《논어》 해석(1)

    제3장 주자와 오규 소라이의 《논어》 해석(2)

    제4장 주자와 오규 소라이의 《학이》편 해석

     

    제4부 ?맹자? 해석

    제1장 주자와 이토 진사이의 《맹자》 해석

    제2장 “군자불위성” “군자불위명”에 대한 한 · 중 · 일 학자들의 해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최근검색도서

관심도서

TOP
출판부홈 카테고리 최근검색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