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하나의 근거로서 중시된다. 전체 사회가 시장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고 돈이연 무엇이든 다 되고 돈이 아니면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풍조가 우리 사회 저변을 채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생각 · 철학 · 사상 등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결과가 바로 보이고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산물이 아니면 관심 영역에 들 수 없다. 이러한 하나의 현상은 중심이 없는 사회와 문화를 초래할 수 있다. 마치 정신은 부재하고 몸통만 꿈틀거리는 생명체에 비유할 수 있을까.

바람직한 지식인상의 부재라는 오늘의 현실만으로도 중국 송나라 때의 지식인 중 한사람인 정이는 재조명될 수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당에서 송으로’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어쩌면 지금보다 더 혼란한 시대였을지도 모르는 사회를 경험하면서 학자로서 ·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사회에 실현시키고자 하였던 투철한 유학자였다. 유학이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학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기원전 5세기경 공자에 의해 체계화된 사상이다. 이것은 이후 맹자와 순자를 거치면서 그 학문적 윤곽을 확실히 내세울 수 있었다. 이 당시의 유학을 선진유학(진나라 이전의 유학이라는 의미에서)이라 한다. 이후 유학의 역사는 사상적인 면에서 침체기를 겪게 되는데, 이 침체기는 송나라에 이르러 그 양상을 일신하게 된다. 송나라의 유학자들은 자기 시대의 고민을 해결할 대안으로서의 유학을 강조하면서 이전의 유학사상에 없던 이론들을 첨가하여 ‘새로운 유학’을 제안하였다. 이 사조를 종합한 사람이 남송의 주희(1130-1200)였기 때문에 이 학문을 주자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희는 선배 유학자들의 사상을 자신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정이의 사상에서 받은 영향이 지대하였다. 정이는 주자학 형성에서 큰 줄기를 차지하는 인물인 것이다. 주자학은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 수용되어 이후 500여년의 역사와 함께 했던 사상이기도 하다.정이는 한국 사상사(특히 조선시대)에서 기둥이 되는 주자학의 형성에서 큰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상가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사적 위치에 비해 그 사상에 대한 전문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보다 심도있는 정이연구를 위한 하나의 기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러한 작업은 당시 정이가 수행하였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오늘의 우리들 삶에서 반영시키는 측면을 놓치지 않는, 살아 있는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