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남화원의 향연―이야기 장자철학』은 40여 년 동안 노장사상을 연구해온 우리 대학 송항룡 교수가 장주(莊周)의 사상을 짤막한 이야기 형식으로 묶어낸 책이다. 서른 여섯 꼭지의 이야기가 5부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이 책은 장주가 『장자』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전개하였던 사상의 단편(斷片)적 재현이면서 저자 송교수가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도 하다. 이야기라고 해서 여기에 실린 글들이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학자의 잔잔한 술회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서른 개가 넘는 짧은 이야기들은 서로 맞물려 이어지면서 흥겹고 신명나는 만담 또는 재담으로 읽힌다. 그 속에는 생동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이들 이야기들은 우화이기도 하고 격조 높은 코메디이기도 하고 통렬한 풍자이기도 하다. 요컨대 소설이 요구하는 내용과 형식을 두루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남화원 무하유지향이라는 상상의 마을에서 전개된다. 저자는 그곳을 ‘세상 밖’에 있는 고을이라고 소개한다. 이 고을이 상상의 마을, 세상 밖의 고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리적 시간과 공간 관념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물들, 사건들이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노자와 장자, 공자와 맹자, 묵자, 한비자, 손자와 오자; 공손룡과 혜시 등 출연 인물들은 생몰 연대 격차가 수백 년에 이르러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동양의 큰 사상가들인 이들이 시골 장터에 모여 물건을 팔기도 하고 도둑,백정,목수,어부,주모,꼽추,언청이 등과 동등한 신분으로 치고 박고 떠들고 조롱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티끌, 아지랑이, 구슬, 물안개, 구름 등의 사물과 하루살이, 쓰르라미, 뱁새, 거북 등의 동물도 적절히 의인화되어 제각각 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남화원에서 이들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없다. 상하관계뿐 아니라 이 책에서 경계라는 경계는 모두 허물어져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경계가 이미 허물어져 있고 사물과 인간, 삶과 죽음, 참과 거짓이라는 경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뭐니뭐니해도 짜릿하게 읽히는 대목은 공자와 맹자가 오나가나 면박을 당하는 초라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곳이겠다.

이는 장주가 터럭만큼의 부자유도 용납하지 않는 절대자유를 추구한 사상가인 까닭에 예의와 법도로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유가 사상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4부까지 이어져 오던 통쾌하고 흥겨운 이야기들은 5부에 오면 정색을 하고 약간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 흥겹게 이어지던 4부까지의 이야기들은 5부에서 재조명된다. 대화 형식으로 묶인 5부에 이르면 저자는 철학자답게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이 문제들은 언어와 존재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인과론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인식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제가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는 5부를 읽다보면 저자가 왜 지금까지 무하유지향이라는 세상 밖 마을의 이야기를 해왔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이 책은 전각(篆刻)의 美를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