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균열을 분광하는 시선, 에코 프리즘
“단언컨대 이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용도를 굳이 정해야 한다면 거짓된 위로와 값싼 낙관을 걷어내는 데 쓰여야 할 것이다.
저자들이 분석한 세계는 깨지고, 뒤틀리고, 오염된 곳이다.
이 책을 덮은 뒤 독자가 마주할 현실은 책을 펼치기 전보다 훨씬 불편해질 것이다.
익숙했던 풍요가 누군가의 희생이었음을,
시대의 각광을 받는 최첨단 기술이 착취의 결과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에코+프리즘 『에코 프리즘』의 ‘에코’는 한 가지 뜻만 가지고 있지 않다. 삶의 터전(Oikos)이자 살림살이의 경제(Economy), 그리고 위기에 처한 생태(Ecology)가 겹쳐진 이름이다.
이 책을 함께 쓴 13명의 저자는 숲과 바다를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었다. 대신 생명과 정치가 얽히고, 자본과 권력이 다투는 치열한 현장으로 ‘에코’를 다시 정의했다. 복잡한 위기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프리즘’을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다.
거울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하지만 프리즘은 빛을 꺾고 여러 갈래로 나눈다. 저자들은 겉보기에 단단해 보이는 문명의 내부를 투과하여, 복합적인 위기가 교차하는 결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도나 해러웨이(Donna Jeanne Haraway)의 ‘회절(回折)’ 개념은 이러한 분석을 전개하는 중요한 참조점이다. 빛이 장애물을 만나 휘어지며 겹치는 현상에 주목하여, 세상을 칼로 자르듯 나누지 않고 서로 다른 존재가 섞여 만드는 무늬를 읽어냈다. 기후 붕괴와 전쟁은 물론,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문제까지 다루었다. 구체적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각 저자들은 섬세하게 포착하고자 했다.
책의 의미 이 책의 이러한 시도는 2023년 출간된 『SF 프리즘』(박문사, 2023)의 문제의식을 잇는다. 전작이 SF라는 도구로 미래의 단면을 살폈다면, 『에코 프리즘』에서는 지금 여기의 생태적 현실로 시선을 돌린다. 두 책을 나란히 읽는다면 상상된 미래와 당면한 현실이 겹쳐진 기묘하고도 입체적인 무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낯선 무늬가 경직된 사고를 환기하는 유의미한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또한 ‘성균인문학술총서’의 두 번째 결실인 동시에,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BK21 4단계 교육연구단이 펴내는 ‘성균 한국어문학총서’의 네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들이 학문적 엄밀함과 대중적 소통을 잇는 가교로써, 연구실의 언어가 독자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학은 자본주의의 생산 양식과 결합하고, 최첨단 기술과 충돌하며, 소외된 신체들과 얽혀 들어가는 전장이 되었다. 이 책은 막연한 공포나 섣부른 희망 대신, 문명의 구조적 모순을 파고드는 분석과 상상력을 제안하려 한다. 13명의 저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쏘아 올린 빛은 서로 교차하고 간섭하며 위기의 실체를 드러낸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모순을 해부하는 것에서 시작해, 숲과 사물, 인공지능과 신체가 맺는 구체적인 관계 양상을 추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대학교 조교수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부교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변대학교 외국어학원 박사과정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경성대학교 창의인재대학 조교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여는 글 : 문명의 균열을 분광하는 시선, 에코 프리즘
제1장 태양광 코뮤니즘: 기후 위기와 마르크스주의적 비판_서동진
기후정의운동 이후
기후위기를 위한 유물론은 무엇인가: 자연과 추상 그리고 가치형태
태양광 코뮤니즘: 민중의 발전소는 가능한가
제2장 다중 위기를 헤쳐 나가는 기후 센티넬_명수민
다중 위기를 헤쳐 나가기
식물계절, 생태적 당혹감, 기후 센티넬
계절 센티넬에서 기후 센티넬으로
기후 센티넬과 함께 다중 위기를 헤쳐 나가기
제3장 1990년대 전환기의 불임 디스토피아_강지희
‘영광 핵발전소 무뇌아 사건’과 반핵운동의 대중화
핵토피아 제국주의와 절멸의 풍자성― 마당극 〈먹이사슬〉(1989), 만화 〈핵충이 나타났다〉(1989)
통치성의 위기와 정상가족의 재신성화― 찬핵소설집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1991)
풍물 소리로 재구성한 원시적 열정― 박혜강 『검은 노을』(1991)
생태계급으로서의 민중의 꿈 이후의 자리에서
제4장 『공해연구』에 나타난 주부 정체성의 길항_주예은
서론
『공해연구』, 환경운동과 민족·민중·반체제 운동
『공해연구』의 민중성
주부-불완전한 시민
조직화되지 않은 민중 혹은 사적영역에만 존재하는 여성
결론
제5장 레닌의 마법 램프: 러시아의 전기화 또는 공산주의라는 SF_오석화
레닌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전기의 에피스테메, 또는 음극적 인식론
일리치의 전구(лампочка Ильич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레닌의 작은 램프”
제6장 중국 내 기후소설 연구 동향 분석_김보청
들어가며
중국 내 기후소설 연구 동향 분석
중국 내 기후소설 연구 내용 분석
문제점 및 향후 과제
나오며
제7장 사물의 이야기와 역사_정나리
들어가며: 인류세와 쓰레기
행동하는 사물: 물질의 창조적 행위성
이야기하는 사물: 이야기를 품은 물질(storied matter)
역사를 기억하는 사물: 역사를 품은 물질(historied matter)
나가며: 사물/쓰레기의(서사적) 행위성과 생태학적 의식
제8장 인간-비둘기의 굴절된 ‘얽힘’_도쿠나가 에미
혐오 동물, 비둘기가 만들어낸 노동의 자리
돈 물어다 주는 비둘기
비둘기 퇴치업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포획이 답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위한 실천
인간-비둘기의 굴절된 ‘얽힘’
제9장 생성형 AI의 신체와 인공지능의 지질학_최연진
서론
기계적 퓔룸과 지능기계로서의 퀴사츠 해더락
수분의 순환으로 연결된 아라키스의 기계신체(들)
뉴튼 역학의 확실성에서 양자역학의 재귀적 불확실성으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와 생성형 AI의 지질학
결론
제10장 하이퍼객체와 나노객체의 세계: 염지혜의 작품 속 인류세의 객체들_이준석
들어가는 글
객체지향존재론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신유물론적 맥락에서의 이해
객체지향존재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하이퍼객체(hyperobject)와 나노객체(nano-object)
사례연구: 염지혜의 작품에서 관찰되는 하이퍼객체와 나노객체
나가는 글
제11장 ‘크립 사이보그(crip-cyborg)’로서의 장애 신체·정신_최새흰
‘크립 사이보그(crip-cyborg)’의 가능성
정치적 지도 속 보철— 「로라」, 『므레모사』
통제와 의존의 개념적 전환—『파견자들』
결론
제12장 개에게 배우는 인간의 언어_임태훈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유행이 잊어버린 것
미국의 종말을 상상하는 이유
소년은 개에게 무엇을 배웠을까
도망칠 곳이 없으면 괴물이 된다•
제13장 김종철의 가속주의적 생태주의: 급진적 단절의 반철학_정재룡
김종철, 가속주의자
선언의 난국
속도와 가속
발명의 정치학
급진적 단절: 김종철의 반철학
나가며: 예언자적 지성과 시인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