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그렇게도 아팠지만,
그렇게도 힘들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_____흘러내린 눈물은 모두 술로 채웠다
힘들 땐 바BAR
“처음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한 주변 사람들은 나를 무척이나 불쌍히 여겼다.
당시에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 보니 나는 불운한 사건을 겪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결코 동정의 대상은 아니다.
정말로 위로를 받아야 할 이들은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내 자신과
평생 엄마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야 하는 내 딸,
그리고 장성한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장인어른과 장모님 두 분이다.
나는 무너진 담장 아래서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가끔 뒤돌아보며 눈물 흘릴 때도 있겠지만
이제 나에게는 텅 빈 마음 달래기 위해 찾아갈 곳이 있으니까.”
_____권혁민. 30대 후반의 서울 토박이로 국문학과 유학동양학을 오래 공부했고, 딸이 한 명 있다. 부드러운 인상처럼 섬세한 감수성을 가졌지만, 이전에는 책을 쓰겠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책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겠거니 싶었다. 학교와 집, 직장과 집을 주로 오가는 ‘얌전한’ 모범생처럼 살아왔다.
갑자기 가장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을 잃는 일은 그 전에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끝내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알고 싶었고 또 알아야 했다. 살아야 했기에,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끝없는 절망과 슬픔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었다. 깊은 상실감 속에서 약하고 약한 평범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순탄하고 평온하다 믿었던 일상의 틈이 깨져버리는 그 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결국 그 답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겠지만, 그 답을 찾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
_____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지난 4년간 서울의 바BAR를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칵테일 한 모금에 세상이 뒤흔들리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침울했던 사람에게 한순간에 생기를 되찾아 준 칵테일이라는 술과 바라는 공간을 더 즐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참 많이도 마시고 다녔다. 저녁 어스름을 벗 삼아 서울 곳곳의 바를 배회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고, 그동안 엄마 품을 모른 채 자란 딸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바 기행(紀行)이라는 이름의 기행(奇行)이 시작되었다. 참 많은 곳을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취기로 가득한 즐거운 여정 가운데 흘러내린 눈물은 모두 술로 채웠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가닥의 실타래를 가다듬고 정돈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이 책은 그래서 역경과 고난 앞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한 인간의 구원과 힐링의 기록이다.
_____바에서라면, 누구나 울어도 괜찮다, 마셔도 괜찮다. 결국 우리는 바로 설 수 있을 테니까. 휘청대는 시간은 모두에게 필요했다. 울어야 하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바텐더가 자신이 내어준 한 잔을 손님이 맛있게 즐기길 바라듯, 이 책의 독자들도 이 책을 재미있게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펴냈다. 바에서 만났던 많은 바텐더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결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바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던 저자가 사소한 계기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원래 ‘바’라는 공간은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과는 달리 그저 편안하게 술 한 잔 즐기고 올 수 있는 곳이며, 또 바텐더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기술을 연마하는 직업이라는 의식 역시 널리 퍼지면 좋겠다.
1987년생. 성균관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유학동양학을 공부했다. 전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애엄마를 먼저 떠나보내고, 우울증에 빠져 마음이 말라가던 중 우연히 접한 칵테일 한 잔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마시겠거니 싶다. 지금도 어딘가에 앉아 좋아하는 칵테일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 아니면 사제락(Sazerac)을 홀짝이고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
여정의 서막: 자타 공인 최고의 바
챕터 원(Chapter One)과 시작
화가의 아들: 타고난 대로 살지 못하면 그것이 곧 비극이라
숙희(熟喜)와 기질
프루스트의 마들렌: 잊을 수 없는 파리 여행의 추억
뽐(Pomme)과 회상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은 없을까
요츠바(Yotsba)와 계보
배우면서 마시면 더 맛있는 법
미스터 사이몬(Mister Saimon)과 배움
주(主)님을 모시는 자와 (酒)님을 마시는 자
루바토(Rubato)와 신앙
골목길 탐방: 사실은 술보다도 사람 보러 가는 것
바람과 모험
고전의 무한한 변주: 매력 넘치는 클래식 칵테일 순례
칵테일 투어와 탐닉
감각의 향연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와 쾌락
정신의 닻줄을 내리며: 자기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
시호(時好)와 고독
이런 술벗 한둘이면 인생은 충분해
기슭과 우정
Sip it, Don’t shoot it: 그때 우리가 처음으로 마셨던 술은 뭐였을까
더 팩토리(The Factory)와 성장
제가 이런 데 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바 인 하우스(Bar in House)와 환대
In Aqua Sanitas: 칵테일만큼이나 기억에 남은 물 한 잔
연남마실과 건강
프리다 칼로와 폭탄을 둘러싼 리본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와 운명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