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에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바람 부는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1958-1963 독일 라인지역에서, 백남준을 만나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Paik Nam June, 1932-2006).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남준에 대해 기억하는 모습은 미디어아트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국내외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중장년 이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시기, 청년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 시작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책이 발간되었다.
해가 뜨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백남준이 독일 라인강 주변 지역에서 보낸 이 기간(1957-1963)은 그의 생애에서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결정적인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준 예술에 관한 연구 가운데 초기인 이 시기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불모지로 남아 있다. 이 시기는 백남준이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토대를 다진 시기로서,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백남준의 예술철학과 미디어아트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파고드는 일이다. 다행히 이 시기에 대한 연구의 물결이 2005년 라인지역에서 일어났다. 2005년 쾰른 아트 페어 <아트 콜로그네(ART COLOGNE)>(2005.10.28.~11.1) 전시회에서 ‘라인지역에서 백남준의 초기 시절’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국제미술품거래협회의 중앙아카이브(일명 차딕[ZADIK])의 주도로 이 중앙아카이브 소유의 녹음 기록물들과 쾰른시 역사기록실에 보관된 마리 바우어마이스터(Mary Bauermeister)의 소장물, 즉 쾰른을 비롯한 뒤셀도르프, 부퍼탈, 본 등에서 백남준과 함께한 모든 콘서트에 대한 것들을 전시하고, 서부독일방송국(WDR)의 협력으로 백남준의 동영상 창작물에서 발췌한 작품들을 상영했다. 이로써 쾰른 아트 페어에서 백남준 초기 시절의 이 ‘역사적인 작업들’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같은 해에 전시회의 내용을 담아 이 책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Nam June Paiks frühe Jahre im Rheinland)』으로 출간했다. 이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처음으로 고국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텍스트와 연보, 기록물로 만나는 청년 백남준
이 책은 텍스트와 연보, 그리고 기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글을 쓴 저자 수잔네 레너르트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를 백남준의 청년기로 보았고, 이 초기 시절 백남준이 독일 라인지역에서 홀로 또는 그의 플럭서스 동료들과 함께 어떻게 기존의 통념과 법칙에 저항하며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는지를 정확한 자료를 통해서 명확히 설명했다. 그녀가 텍스트 주제로 사용한 문구 “화창한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바람이 부는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On sunny days, count the waves of the Rhine. On windy days, count the waves of the Rhine.)”는 백남준의 초기 활동을 비유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이 문구는 1962년도 6월 달력(부퍼탈: 캘린더 출판사)에 나와 있던 것으로서 백남준이 인용했던 구절이다. 이것은 다양한 예술실험을 끊임없이 한 그의 젊은 나날을 연상시킨다.
텍스트에 이어서 저자는 1958년부터 1968년까지의 연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자료가 되는 전문 서적, 인터뷰, 신문 기사 등에서 발췌한 글들로 그 당시의 라인지역을 예술사 속에서 한 지표가 되었음을 인식시킨다.
마지막으로 브리기테 야곱스(Brigitte Jacobs)가 기록물들(1958-1968)을 아홉 단계로 구성해서 백남준 예술의 진화과정을 입증한다. 시간적 구조로 된 기록물들의 구성은 마치 백남준의 행보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날 것 그대로’ 현존하는 듯이 실증적 속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이 변화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그의 행보를 따라갈 수 있다. 특히 이 기록물들은 당시 라인지역에서 일어난 예술혁명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 기록물들은 모두 번역되어야만 했고, 한국의 독자들이 1960년대 라인지역에서 일어난 문화 현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원본과 번역문을 병치시켰다. 그러나 여기에는 백남준의 음악평론 <우연한 음악(The Accidental Music)>(<자유신문> 1959년 1월 6/7일, 서울 발행)이 없다. 이것은 주석에서 제목만 언급되었기에 그 내용을 여기에 역자의 노력으로 추가했다. 이 평론의 내용이 여기에 보충된다면 독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어로 된 이 평론은 1958년 9월 이후에 일어난 그의 음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가치가 무궁하기에 역자는 1950년대의 원문을 당시의 문체와 현대적 문체로 옮기고 영문 번역과 함께 이 책의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었다.
1995년 쾰른대학교에서 『아서 쾨프케(Arthur Køpcke (1928-1977)의 그림, 오브제 그리고 플럭서스-작품들』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0년대~1970년대의 예술에 특화된 연구 경력을 갖고 있는 미술사가로서 특히 플럭서스 예술에 정통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2003년 뒤셀도르프 미술관(Kunsthalle)에서 전시회 <1962/63 뒤셀도르프에서 있었던 플럭서스(Fluxus in Düsseldorf 1962/63)>를 기획했다. 이 책의 텍스트는 2005년도 전시회를 위한 연구프로젝트 수행의 결과이며, 이에 대한 증보가 전시도록 『백남준』 (수잔네 레너르트/이숙경 편집,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영국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 오스트필더른 2010)에 실려 있다. 그 후에도 백남준과 플럭서스와 관련된 연구가 있으며, 그 가운데 독보적인 글은 「“플럭서스는 빌헬름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백남준). 장-피에르 빌헬름과 독일에서 있었던 플럭서스 운동의 초기 시절(1962/63)」이 다음의 책에 실려 있다. 수잔네 레너르트·실비아 마틴·에리카 윌턴(편집). 『“우연은 모든 것을 잘 하고 있다(Le hasard fait bien les choses)”: 장-피에르 빌헬름: 앵포르멜, 플럭서스 그리고 갤러리 22』. 쾰른 2013. 최근 저작으로는 수잔네 레너르트·수잔네 티츠(편집). 『1967-1978 묀헨글라트바흐 시립미술관의 상자카탈로그(The Box Catalogues of the Städtisches Museum Mönchengladbach 1967-1978)』, (쾰른: 발터&프란츠 쾨니히 서점 출판사 2021)가 있다.
독일 뮌헨대학교 서양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그림에 있어서 신체적 생태적 관점」, 「요셉 보이스의 “확장된 미술 개념”과 대안문화: 그의 종교적 생태학적 작품을 중심으로」, 「백남준과 플럭서스: 실증자료를 통한 플럭서스 공연의 중심 인물 백남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발터 벤야민과 연관 속에서의 백남준의 행위예술작품 <오마주 존 케이지>에 대한 해설 시도: 생소화 효과와 아우라」, 『플럭서스 예술혁명』(공저), 『미디어의 교섭과 횡단』(공저)이 있다.
출판에 붙여_____귄터 헤르촉
번역에 붙여_____전선자
라인지역에서 백남준의 초기 시절(1958-1963)_____수잔네 레너르트
연표(1958-1968)_____수잔네 레너르트
기록물_____브리기테 야곱스
기록 1.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1959년 11월 13일, 갤러리 22
기록 2.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아틀리에, 린트가세, 쾰른, 1960
기록 3.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괴짜들>, 테아터 암 돔, 쾰른 , 1961년 10월 26일-11월 6일
기록 4. <작은 여름축제-존 케이지 이후(Kleines Sommerfest-Après John Cage)>, 파르나스 갤러리, 부퍼탈, 1962년 6월 9일, 조지 마키우나스, 벤저민 패터슨 등등의 작품이자 공연들
기록 5. <음악에 있어서 네오-다다>, 1962년 6월 16일, 뒤셀도르프 캄머슈필레
기록 6.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 백남준, 파르나스 갤러리, 부퍼탈, 1963년 3월 11-20일
기록 7. 츠비르너 갤러리, 쾰른, 1965년 5월 22일
기록 8. <24-시간-해프닝(24-Stunden-Happening)>, 파르나스 갤러리, 부퍼탈, 1965년 6월 5일
기록 9. 아헨 갤러리, 아헨, 1966년 7월 25일
부록
부록 1. 음악평론 「우연한 음악」, 1959년 1월 6/7일, 자유신문_____백남준
부록 2.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독일 라인지역 & 뉴욕」_____전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