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 2020-12-31 |
ISBN | 979-11-5550-446-8 |
면수/판형 | 신국판(152 X 225)·268쪽 |
가격 | 20,000원 |
《삼산재집》은 영조와 정조 시대에 활동한 삼산재 김이안(金履安, 1722~1791)의 문집으로 모두 12권 6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서울 지역에 세거한 안동 김문의 적통으로서 노론의 낙론(洛論)을 대표하는 김창협(金昌協)의 증손자이자 김원행(金元行)의 아들이다. 1759년(영조35) 3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이후 보은 현감, 금산 군수, 밀양 부사 등을 역임하고,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연관에 기용되었다. 63세 되던 1784년(정조8)에는 지평, 보덕, 찬선 등을 거쳐 1786년 좨주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직소를 올리고 나가지 않았다. 북학파 학자인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아버지의 문인이자 성리학자인 박윤원(朴胤源), 이직보(李直輔), 오윤상(吳允常) 등과 교유를 맺었으며, 가학을 잘 계승하여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부자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삼산재집》에는 모두 202제(題)의 시가 실려 있는데,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은 저자의 시에 대해 혼후하고 순정하며 분명하고 걸출하여 법으로 삼을 만하다고 극찬하고 있다. 《삼산재집》을 통해 저자의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조명해볼 수 있는 고리이다. 또한 《삼산재집》에는 모두 132통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이 가운데 단순한 안부 편지는 3통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예설(禮說), 경설(經說)에 대한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에 이미 예학과 경학으로 명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잡저(雜著)에는 별도로 〈의례경전기의(儀禮經傳記疑)〉 2권을 수록하고 있다. 저자가 모친의 거상 중에 《의례》를 읽으면서 생긴 의문과 자신의 견해를 기술한 것으로, 분석과 고증을 통해 이전 주해가들의 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정오(正誤)를 판단하고 있다. 저자의 예학에 대한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삼산재집》과 저자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삼산재집》은 시인으로서, 예학자로서, 경학가로서, 성리학자로서의 저자를 조명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당시 경기 지역 노론의 교육 거점이었던 석실서원(石室書院)의 학문 수준과 관련 인물 연구에도 뺄 수 없는 저작이다.
1722(경종2)~1791(정조15). 18세기에 활동한 문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원례(元禮), 호는 삼산재(三山齋),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서울 지역에 세거한 안동 김문의 적통으로서 김창협(金昌協)의 증손자이자 김원행(金元行)의 아들이다. 가학을 잘 계승하여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부자에 비유되곤 하였다. 1759년(영조35) 3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이후 보은 현감, 금산 군수, 밀양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연관에 기용되었다. 63세 되던 1784년(정조8)에는 지평, 보덕, 찬선 등을 거쳐 1786년 좨주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직소를 올리고 나가지 않았다. 북학파 학자인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아버지의 문인이자 성리학자인 박윤원(朴胤源), 이직보(李直輔), 오윤상(吳允常) 등과 교유를 맺었다. 예설과 역학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 《삼산재집》 12권이 있다.
196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공주사범대학 중국어교육과, 성균관대학교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 석사와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 연수부 및 상임연구부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번역서로 《무명자집 7, 8, 15, 16》, 《삼산재집 1, 2, 3, 4, 5》, 《국역 기언 1》(공역), 《교감학개론》(공역), 《주석학개론 1, 2》(공역), 《사고전서 이해의 첫걸음》(공역), 《대학연의 1, 2, 3, 4, 5》(공역), 《국역 의례(상례편)》(공역), 《국역 의례(제례편)》(공역), 《국역 의례(관례혼례편)》(공역), 《예기정의 1, 2》(공역), 《예기집설대전 3, 4》(공역), 《오서오경독본 예기 상, 중, 하》(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