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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손자, 역사를 만들고 시대에 답하다
신정근 지음    
  • 출간일2014-01-30
  • ISBN979-11-5550-033-0 03150
  • 사양변형판 145x210·328쪽
  • 가격15,000원
  • 사람의 무늬 > 인문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
  • 도서구입처
  • yes24
  • 알라딘
  • interpark
  • 교보문고

책소개

/ 문文의 거장 공자―무武의 거장 손자를 한자리에서 만난다

 

/ 문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공자와 손자는 각각 문과 무의 한 세계를 뚜렷하게 일구어 낸 거장들이다. 둘은 공히 춘추시대의 끝자락에서 활약하면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과 개인적 통찰을 종합하여 학문의 일가를 이루었으며, 사후에 각각 문성文聖과 무성武聖(또는 병성兵聖)으로 존숭을 받았다. 얼핏 양 극단을 이룰 것처럼 보이는 인류의 두 스승을 이제 한자리에서 다시 만난다. 사실 그들은 유학(문)과 병법(무)이라는 자기 한계 안에 머무르지 않고, 각기 다른 빛깔과 방식으로 문과 무를 결합해 내려 했던 융합의 대가들이었다. 이를 통해, 공자는 연면한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냈고, 손자는 전승으로 가장 실천적인 현실을 기획해 냄으로써 구체적으로 ‘시대’에 응답했다. 이 책은 과거 두 거장의 언행과 사상을 대비적으로 살피면서도, 그들 둘 사이를 공히 관통했던 역사관과 공통의 시대감각을 박진감 넘치는 언어로 소개하면서, 그로부터 우리 시대를 바로 보게 만드는 혜안을 찾아낸다.전문가와 초심자들 사이의 인문적 가교를 자임하는, 파워 라이터 신정근 교수의 ‘시대와 거울―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 시리즈의 서막이다.

 

/ 공자는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냈고

/ 손자는 가장 냉철하게 시대에 응답했다

 

/ 문과 무―무와 문, 대비로써 통합하는 인생에 관한 한 통찰지금껏 공자는 현실에서 실패했지만 역사(유교 국가)를 만들어 냈고, 손자는 현실(전승)에서 성공했지만 역사(패권국?통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평가만이 뚜렷하게 대조되어 왔다. 특히 이 두 사람은 중국을 넘어서 각각 동아시아의 문과 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숭앙 받기에, 접점이 없는 철로처럼 대립적 시각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거장은 문과 무를 겸전兼全하려고 했지, 서로 완전히 별개인 양 떼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예컨대, 공자는 위기의 상황에서 군사나 식량보다도 상호 신뢰를 강조하고, 그를 통해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는 화합의 가치를 역설했으며, 이에 손자는 공자가 그렇게 중시했던 인仁을 장수의 핵심 품성으로 열거하곤 했다. 물론 그의 인이 공자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는 공자의 핵심 가치를 쓰는 데 그 어떠한 주저함도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들이 같은 사상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서로 통하며 또 어떻게 서로 갈리는지 보다 분명하게 밝혀내고자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 이 시대의 제자백가―공자와 손자 다시 읽기

저자는 ‘학學’으로 시작해 ‘명命’으로 끝나는 『논어』의 구조를 살피며 공자 편을 연다. 그가 보기에 『논어』는 ‘배움의 즐거움’에서 시작해 ‘운명과 그 최대치’를 논하며 마감되는, 한 권의 편집된 책이다. 즉,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큼, 인간에겐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자의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 이러한 유교적 현실론은 자신과 주위의 행복을 점검하는 차원을 거친 뒤, 현 시대를 진단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저자는 온통 갑을 관계로 전락해 버린 씁쓸한 우리네 세태를 바라보며 공자의 ‘서恕’의 윤리학을 환기하고, 빈부 문제에 대한 공자의 해법을 예로 들며 경제 민주화에 대한 유교적 이상을 대입시킨다. 예나 지금이나, 공자가 그랬듯이, 사람 사이의 신뢰가 이 모든 것의 바탕이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탐구했다는 손자를 떠올려, 극단적으로 그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라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손자』를 읽어 보면 손자는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전쟁광이나 호전론자가 아니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살인마는 더더욱 아니었다.저자는 이렇게 손자에게 덧씌워진 왜곡의 이미지들을 벗겨내는 데 주안을 둔다. 저자가 보기에, 손자는 상황에 가장 충실하게 선택을 하지만 아군의 피해만이 아니라 적의 피해까지 최소화시킬 수 있는 길을 최선으로 간주하는 ‘현실적 평화주의자’였다. 이것이 바로 지략가라는 본래 캐릭터에 더해, 이 시대에 손자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이렇게 고단한 시절엔 크로스 리딩

/ 신정근 교수의 세설世說, ‘시대와 거울―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 그 첫 번째 책

엘리트가 아니라 시민이 진퇴를 주도하고, 제도 교육이 아니라 평생 교육이 배움을 이끌며, 더 이상 한문이 아니라 바로 모국어가 일상 생활과 사고의 언어가 되고, 쇄국의 국수주의가 아니라 개방의 다원주의가 모든 것의 기운과 흐름을 만드는 세상이다. 이른바 ‘인문학 열풍’ 이후 동양 고전을 읽는 방식에 생겨난 많은 변화들도 이러한 세상의 분위기에서 멀리 있지 않다. 이제 동양 고전은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독식하는, 고고하거나 고독한 학문의 지위에서 군림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를 매개할 수 있는 준전문가(‘사이’ 전문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준전문가의 언어가 초보자에게 더 쉽고 더 절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것은 바로 동양 고전이 보다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제 ‘시대와 거울―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이라는 표장의 책 꾸러미를 세상에 보낸다. 거대한 사상의 영토―제자백가―에서 벌어졌던 진실의 각축 속에서, 역사적이며 시대적인 공감을 획득한 두 사상가와 그들의 역작을 ‘포개어 읽는다.’ 그들은 당대의 시공을 함께 누렸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대인의 사유와 행동을 지배하는 거장들이다. 그 자체로 시대의 얼굴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었으며, 이제 우리 시대를 반성케 하는 거울이 되었다.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을 통해, 대비로써 통합하는 역설의 통찰로 잠시 고단한 이 시절을 반성해 보자. 삶은 언제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지은이 |

/ 신정근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동양 철학과 예술 철학을 강의하며 교학상장하고 있다. 학교 담장을 넘어서는, (사)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강연+공연’의 신인문예술의 길을 찾고 있으며, 『웹진 오늘의 선비』(http://www.ssp21.or.kr)를 발행하면서 세상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모색 중이다.『동양 철학의 유혹』,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등의 저술을 통해서는 대중적인 영역을, 『사람다움의 발견』, 『철학사의 전환』 등의 저술을 통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영역을 아우르며 다루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예술미학총서(중국편)’을 기획하고 공동 번역하여 사상 중심의 동아시아 고전을 예술?미학의 시각으로 읽어 내는 지평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나아가 동양 철학의 현대적 재구성과 그 영역의 확장에 관심을 두면서 텍스트를 보다 깊고 넓게 읽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굴되는 동아시아 학문의 모험과 도전 정신은 현재의 사상적 자원으로 심화되고 있다.

 

■ 책 속에서 | 

그런데 모든 시대가 춘추전국시대처럼 빠른 효과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안정되면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는 근본적인 길을 찾게 된다. 이에 따라서 한제국의 수립 이후에 느리지만 확실한 공자의 길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중국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시대 상황에 따라 공자의 길과 손자의 길은 부침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각각 문의 길과 무의 길을 대변하는 거장으로 추앙을 받았다.

|27-28쪽, ‘프롤로그_문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중에서

 

이렇게 보면 공자의 사상, 즉 유학은 전근대의 사회가 약탈, 부정, 비리로 점철된 약육강식의 정글로 타락하는 것을 막아낸 가치의 보루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실의 어떠한 권력도 ‘공자’의 이름에 침을 뱉을 수 없었다. 아니 현실의 권력은 ‘공자’의 권위를 빌려서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고자 했다. 유방도 노나라 지역을 지나면서 공묘孔廟에 들러서 제사를 지냈고, 위풍당당하게 세계 제국을 세웠던 청제국의 건륭제도 공묘의 편액에 글씨를 남길 정도였다. 그들은 공자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인문의 군주이자 문덕의 군주였던 것이다. 유학은 왕도 없고 사대부도 없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시민은 사대부 또는 유학자의 대변 없이 스스로 자기 권익을 주장하고 현실의 권력을 심판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자의 사상은 철저하게 인권 유학으로 탈바꿈할 때 현대 사회에 닻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43-44쪽, ‘공자 인트로_공자는 왜 현실에서 실패하고 역사에서 살아남았는가’ 중에서

 

이렇게 보면 『논어』가 왜 학學으로 시작했다가 명命으로 끝나는지 그 비밀이 풀리게 된다. 공자는 제일 먼저 사람이 자신의 한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배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공자는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냉정하게 한계를 직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만큼이나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면 자신을 과도하게 괴롭힐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못 살게 굴기 때문이다.

|68-71쪽, ‘한계를 알아야 나와 남을 이끌 수 있다’ 중에서

 

요즘 우리나라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지금보다 못한 삶의 조건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의식을 심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서恕와 연관시키면 우리가 비참한 삶에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타인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지금보다 못한 삶에 처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게 될 것이다. 즉, 내가 지금보다 못한 삶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이 모르는 체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이 지금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모른 체할 수 없는 것이다.

|85쪽,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가꾸는 원칙’ 중에서

 

경제 민주화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도 기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활동이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제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게 그렇게 창출된 이윤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95쪽, ‘사회는 윤리와 이익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중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될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떻게 이끌어 갈까?”라고 고민하게 된다. 이때 주위 사람을 잘 몰라서 어떻게 할 수 없다며 리더의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소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이 무엇이고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자신과 조직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원칙이 분명하고, 그 원칙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주위 사람이 괜히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주위 사람을 불신할 게 아니라 자칫 자신의 정체가 흐릿하지 않은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128-129쪽,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삶의 기술’ 중에서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의 우선 과제를 물었다. 공자는 대내적으로 식량이 풍족하고, 대외적으로 군사력이 튼튼하며, 시민이 지도자를 믿거나 시민끼리 서로 믿도록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평소 꼬치꼬치 캐묻기로 유명한 자공인지라 공자의 첫 번째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퍼부었다. 상황이 세 가지를 다 충족시킬 수 있지 않으면 셋 중에 어느 것을 포기할 수 있고 또 둘 중에 어느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 물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선군정치先軍政治처럼 군사력을 가장 중시하여 그것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자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다면 먼저 군사력을 포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다음의 상황에서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자의 이러한 대답은 상당히 뜻밖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군사력이 있어야 침입 세력을 막고 식량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자는 믿을 만한 물질적 기반보다도 무형의 신뢰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152-154쪽, ‘신뢰라는 열쇠로 갈등의 고리를 풀다’ 중에서

 

이렇게 보면 공자는 한 나라의 현 정부와 반란군을 구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혁명마저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치적 이해 득실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시대와 사회를 구제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184쪽, ‘공자의 일생’ 중에서

 

법치는 국력의 안정적인 생산과 국력의 주기적인 소비의 시스템이 맞물려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평민을 국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요인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진제국의 통일 대업은 진시황에게는 최고의 영예일 수 있지만, 제국에게는 최악의 계기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법치에 의해서 통일의 대업을 성취했지만, 그 뒤에 법치는 평민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치가 평민 개개인의 권익을 우선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국력의 극대화만을 도모하려고 했던 방향 자체에 내재해 있는 요인의 외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제국의 멸망은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던 법치의 내재적 원인에 의해 초래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202쪽, ‘손자 인트로_손자는 왜 현실에 성공하고서 역사를 만들지 못했을까’ 중에서

 

병가에 속하는 손자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방법을 탐구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손자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라 생각하게 된다. 즉,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간주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손자』를 읽어 보면 손자는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전쟁광이나 호전론자가 아니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살인마는 더더욱 아니다.

|213쪽,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다’ 중에서

 

손자는 교범에 따른 통상적인 규칙과 상황에 따른 기민한 변화를 ‘정正’과 ‘기奇’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정은 아군과 적군이 서로 어떻게 나올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는 내가 어떻게 할지 상대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손자는 정만 써서도 안 되고 기만 써서도 안 된다고 본다.

|230쪽, ‘상황의 조작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 중에서

 

손자는 기만술을 펼치면서 사람들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든 거짓말을 해도 좋고, 또 그렇게 해서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쟁 상황에서 적이 아군의 움직임과 작전을 전혀 간파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하여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만술을 펼쳤다. 기만술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통속적 해석에서는 기만술이 마치 전가의 보도나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처럼 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손자 병법의 본령을 왜곡하는 풀이라고 할 수 있다.

|242쪽, ‘신의 한 수로서 손자의 기만술’ 중에서

 

최선은 전략을 통해서 전쟁을 억지하고, 또 적으로 하여금 전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손자는 이러한 사고를 ‘벌모伐謀’라 했고, 달리는 ‘모공謀攻’이라 표현했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와 손자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공자의 ‘호모好謀’가 손자에서 ‘벌모’와 ‘모공’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호모’를 말하면서 손자가 일구어 낸 병학의 모든 지식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터이다. ‘모謀’의 개념을 통해서 양자는 일을 감정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략을 짜내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던 것이다.

|262쪽, ‘손자와 공자, 시대의 문제를 공유하다’ 중에서

 

손자는 사람이 그렇게 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믿음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러한 판단이 결국 이익도 본체만체하는 의인義人이 아니라 이익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전국시대의 보통 사람[범인凡人]들을 전쟁터로 끌어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나를 따르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게 아니라 손자처럼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먼저 찾아내야 할 것이다.

|275-276쪽,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중에서

 

손자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검토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어떤 길도 배제하지는 않는다. 즉, 그는 파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평화지상주의자도 아니고 평화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전쟁지상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평화와 전쟁 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론자도 아니다. 그는 상황에 가장 충실하게 선택을 하지만 아군의 피해만이 아니라 적의 피해까지 최소화시킬 수 있는 길을 최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간명하게 표현한다면 현실적 평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303쪽, ‘파괴 없는 온전한 승리가 최상의 승리이다’ 중에서

 

작가소개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목차

서문

프롤로그 _ 문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 공자, 역사를 만들다

인트로 _ 공자는 왜 현실에서 실패하고 역사에서 살아남았는가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배움의 학교

한계를 알아야 나와 남을 이끌 수 있다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가꾸는 원칙

사회는 윤리와 이익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예는 불편한 것을 편하게 하는 길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삶의 기술

활쏘기에서 공정하고 아름다운 경쟁을 배우다

신뢰라는 열쇠로 갈등의 고리를 풀다

“모르고 못하는 것에 분노하라”

공자의 자기 소개서 중에서

공자의 인생-정치가와 혁명가에서 교육자로

 

/ 손자, 시대에 답하다

인트로 _ 손자는 왜 현실에 성공하고서 역사를 만들지 못했을까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다

상황의 조작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

신의 한 수로서 손자의 기만술

전쟁의 불확실성을 예측 가능성으로 바꾸는 법

손자와 공자, 시대의 문제를 공유하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백거 전쟁, 손자 병법의 하이라이트 

폭넓은 지식을 군사학으로 녹여내다-손자식 통섭

파괴 없는 온전한 승리가 최상의 승리이다

손자와 오나라의 비극적 최후-뜻밖인가 예상대로인가?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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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손자, 역사를 만들고 시대에 답하다

공자·손자의 역사·인간 통찰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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